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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말하는 ‘오리지낼리티’의 조건

북-로그

by 박세 parxehee 2018.09.05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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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었다. (하루키가 쓴 픽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그가 쓴 에세이는 매우 좋아한다.) 이 책의 주요 독자는 글을 써보고 싶은 사람들일테고, 나 역시 그 중 하나에 속하는데, 하루키가 그들을 위해서 아래와 같은 대목을 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리지낼리티는 그것이 실제로 살아 움직일 때는 좀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것입니다.


특정한 표현자를 '오리지널'이라고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조건이 채워져야 합니다.


1. 다른 표현자와는 명백히 다른 독자적인 스타일(사운드든 문체든 형식form이든 색채든)을 갖고 있다. 잠깐 보면(들으면) 그 사람의 표현이라고 (대체적으로) 순식간에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2. 그 스타일을 스스로의 힘으로 버전 업 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의 경과와 함께 그 스타일은 성장해간다. 언제까지나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그런 자발적.내재적인 자기 혁신력을 갖고 있다.


3. 그 독자적인 스타일은 시간의 경과와 함께 일반화하고 사람들의 정신에 흡수되어 가치판단 기준의 일부로 편입되어야 한다. 혹은 다음 세대의 표현자의 풍부한 인용원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1.이야 어찌 되었든 2.와 3.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의 경과'가 중요한 요소입니다. 요컨대 한 사람의 표현자가 됐든 그 작품이 됐든 그것이 오리지널인가 아닌가는 '시간의 검증을 받지 않고서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 스타일의 질을 논하기 이전에 어느 정도 몸집을 가진 실제 사례를 남기지 않고서는 '검증 대상에 오르지도 못하게' 됩니다.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작품이 적어도 연대기적인 '실제 사례'로 남겨질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즉 납득할 만한 작품을 하나라도 더 많이 쌓아 올려 의미 있는 몸집을 만들고 자기 나름의 '작품 계열'을 입체적으로 구축하는 것입니다.


폴란드 시인 즈비그니에프 헤르베르트는 말했습니다. '원천源泉에 가 닿기 위해서는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흐름을 타고 내려가는 것은 쓰레기뿐이다'라고. (로버트 해리스의 ⟪아포리즘⟫에서 인용).


나는 '소설을 쓴다'는 것에 처음부터 그다지 깊은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무욕無慾이 오히려 다행이었다고 할까, 거꾸로 그게 쉽게 되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어찌 됐든 그게 내 출발점이었습니다. 나는 그 이른바 '숭숭 뚫린' 바람 잘 통하는 심플한 문체에서부터 시작해 시간을 들여 한 작품 한 작품마다 조금씩 내 나름의 살을 붙여나갔습니다. 구성을 좀 더 입체적 중층적으로 만들고 골격을 조금씩 키워 좀 더 범위가 넓고 복잡한 이야기를 채워 넣을 태세를 정비했습니다. 그에 따라 소설의 규모도 점차 커져갔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언젠가는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라는 대략적인 이미지가 내 안에 있기는 했지만, 진행의 과정 자체는 의도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뒤돌아보고 '아, 결국 그런 흐름이었구나'라고 깨달은 것이지 처음부터 정확히 계획했던 것은 아닙니다.


만일 내가 쓰는 소설에 오리지낼리티라는 게 있다면 그건 '자유로움'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스물아홉 살이 되었을 때 '소설을 쓰고 싶다'고 지극히 단순하게, 별다른 이유도 없이 불현듯 생각이 나서 처음으로 소설을 썼습니다. 그래서 별 욕심도 없었고 '소설은 이렇게 써야 한다'라는 제약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만일 당신이 뭔가 자유롭게 표현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 것보다 오히려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 자신은 원래 어떤 것인가'를, 그런 본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게 좋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 문제를 정면에서 곧이곧대로 파고들면 얘기는 불가피하게 무거워집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야기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자유로움을 멀어져가고 풋워크는 둔해집니다. 풋워크가 둔해지면 문장은 힘을 잃어버립니다. 힘이 없는 문장은 사람을 -- 혹은 자기 자신까지도 -- 끌어들일 수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굳이 자기표현 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사람은 보통으로, 당연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뭔가 표현하기를 원한다. 그런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자연스러운 문맥 속에서 우리는 의외로 자신의 본모습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내 경우에는 소설을 쓰고 싶지 않을 때, 혹은 쓰고 싶은 마음이 퐁퐁 샘솟지 않을 때는 전혀 글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97~111쪽에서 부분 발췌.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8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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