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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한다, 어떠한 조건도 없이…, 코코 (Coco,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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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하는 Peter 삐러 2018. 9. 1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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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

영화 ‹코코›의 ‘코코’는 영화 포스터 속 기타를 둘러맨 주인공 남자아이의 이름이 아니었다. 그의 이름은 ‘미겔’이었다! 그럼, ‘코코’는? ‘미겔’의 증조할머니, 즉 ‘미겔’의 아버지(‘엔리케’)의 어머니(‘엘레나’)의 어머니를 부르는 이름이다.

주인공 ‘미겔’은 ‘망자의 날’(el Día de los Muertos)라는 멕시코 전통 명절에 어떠한 계기로 저승으로 넘어가 자신의 증조할머니(‘코코’)의 어머니, 즉 고조할머니(‘이멜다’)를 만나고 고조할머니의 형제들(‘오스카’, ‘펠리페’)를 만나고 증조할아버지(‘훌리오’)와 증조할아버지의 누나(‘로지타’)도 만나고 어떠한 이유로 자신의 고조할아버지를 찾아다니게 된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리베라’ 가문(The Riveras)의 이야기이다. (남미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일까. 이 영화를 보면서 마르께스의 «백 년의 고독»을 떠올린 것은 나뿐만이 아니리라.)

이 영화의 타이틀이,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는 ‘미겔’이 아닌 휠체어에 앉아 있는 연로한 그의 증조할머니 ‘코코’가 된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코코’는 이 영화에서 가장 그리운 대상임과 동시에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인물이다.

꿈이 중요해, 가족이 중요해? 둘 다 중요해.

‘미겔’의 고조할아버지는 음악가가 되겠다는 꿈을 좇기 위해 아내 ‘이멜다’와 딸 ‘코코’를 떠난다.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진즉에 알았다. 그러나 여차한 사정으로 다시 가족에게 돌아오지 못하고 비명횡사한다. 가족들도 그의 행방을 알지 못한다. 가족 제단에도 그의 사진만은 빠져있다. 이 때문에 그는 죽어서도 가족을 만나러 오지 못한다. (저승에 사는 영혼들은 누군가 자신을 ‘사진’의 형태로 추모해주지 않는다면, ‘망자의 날’에 금잔화 다리를 타고 이승으로 넘어올 수 없다는 설정이다.)

고조할아버지가 음악을 이유로 가족을 등졌다는 원죄 때문에 ‘미겔’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이 집안에서 음악은 금기시된다. 음악가가 되고 싶은 ‘미겔’의 꿈은 다락으로 숨어들 수밖에 없다. 가족들은 ‘미겔’이 음악가라는 꿈을 포기하고 가업을 잇기 바란다. “미겔. 너도 이제 아빠를 따라 우리 집안의 가업인 신발을 만들자꾸나.” ‘미겔’의 꿈을 반대하는 것은 이승의 가족들뿐만이 아니다. 저승에서 만난 ‘이멜다’ 고조할머니도 마찬가지다. “미겔. 너를 축복한다. 단, 다시는 음악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 저승에서 이승으로 가기 위해서는 저승에 있는 가족들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는 설정이다.)

‘미겔’은 ‘이멜다’ 할머니의 축복을 받기를 거부하고 도망간다. 도망치는 ‘미겔’은 이렇게 외친다. “가족이라면 내가 꿈을 이루지 못하도록 방해만 할 것이 아니라 내 편이 되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미겔’의 이 울부짖음이 ‘이멜다’ 할머니의 마음을 흔든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로 한 ‘미겔’은 자신의 꿈을 포기하여도 좋으니 가족이 우선이라고 답한다. 어쩌면 그것이 ‘미겔’이 저승 여행(?)을 통하여 얻은 교훈일 것이다. 그러나 ‘이멜다’ 할머니는 ‘미겔’을 이승으로 보내면서 이런 축복을 내려준다. “미겔. 너를 축복한다. 아무런 조건 없이…”

너를 축복한다. 아무런 조건 없이…. 가족의 사랑을 이보다 더 잘 담아내는 말이 또 있을까. 꿈 vs 현실? 고리타분한 이분법이다. 당연히 둘 다 중요해. 꿈을 좇아 가족을 버린다? 가족을 위해 꿈을 희생한다? 둘 다 틀렸다. 미겔. 양자택일의 함정에 빠지지마. 너는 꿈을 좇으면서 가족과도 함께 할 수 있을 거야. 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이토록 따스한 저승, 이토록 귀여운 해골들이라니­….

<코코>에서 그려지는 저승은 매우 따뜻한 느낌이다. 전통 명절인 ‘망자의 날’ 기간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멕시코 사람들은 이 기간에 해골 분장을 하고 흥겹게 지낸다고 하는데 죽은 사람을 기리는 의식이 음울하지 않고 매우 밝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프리다 칼로가 등장한다. 일생을 고통스럽게 살다간 예술가가 저승에서는 그를 기억하는 이승의 수많은 사람들덕분에 행복하게 지낸다. 여전히 작품 활동을 하면서. 많은 유명인들 중에 유독 프리다 칼로를 등장시킨 이유가 궁금했다. 스토리 전개상 꼭 필요하지도 않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반면, 한 이름 없는 악사는 이승에서 그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어 결국 사라지고 만다. 저승에서는 이를 ‘두번째 죽음’이라고 부른단다. 그들은 어디로 가게 되냐고? 영영 사라지는 것일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저승이 쓸쓸하게 그려지는 유일한 장면이었다.

오래도록 기억될 노래, <Remember me>

저승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미겔’이 자신의 증조할머니 ‘코코’에게 “할머니의 아버지가 들려주랬어요.” 하며 시작하는 노래, <Remember me>. 마치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모두 이 한 장면을 위하여 준비된 것처럼 감정이 터져나온다. 처음으로 가족들 앞에서 기타를 잡고 노래를 하는 ‘미겔’, 목석처럼 우두커니 앉아 그의 노래를 듣고 있던 ‘코코’ 할머니, 그리고 그 광경을 보고 있는 가족들의 얼굴들…. 아, 이 장면과 이 노래는 아마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좋은’ 이야기의 여운

영화든 드라마든 소설이든 좋은 이야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다른 이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게 만들고, 또 다른 새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코코>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아내에게 <코코>가 어떤 영화인지 열심히 설명했고, 나의 설명을 들은 아내는 몇몇 설정에 놀라워하며, <코코>가 참 좋은 이야기라고 평했다. 그리고 우리도 이런 이야기를 써보자고 했다. 이왕이면 지금 자라나고 있는 우리의 아이(총총이)가 볼 수 있도록 그림책 형태로 만들자고, 까지.

<코코>의 따뜻함이 묻어나는 그런 이야기를 써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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