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버드 (2017)

‘레이디 버드’는 ‘크리스틴’(시얼샤 로넌Saoirse Ronan)이 직접 지은 자신의 이름이다. 부모 품을 떠나 멋진 동네로 훨훨 날아가고픈 소망을 꾹 눌러담은 작명이랄까.  

초등학교 때였나. 처음으로 이메일 아이디를 만들 때가 떠오른다. 부모로부터 받은 이름이 아닌 나를 지칭할 새 단어를 찾아야 했던 그 짧은 순간의 묘한 설렘이 기억난다. 어떻게든 멋진 이름을 붙여보고 싶어 영어사전을 뒤적였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무거운 질문에 나는 무엇이다, 라고 과감한 답을 내밀 수 있는 무모한 용기.

그래도 그 이메일 아이디를 실제 생활에서까지 “안녕. 나는 ⃝⃝이야.”라고 하면서 말하고 다니지는 않는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라고 생각하지 않나, 보통?

내가 바로 ‘레이디 버드’님이시다.

그러나, ‘크리스틴’ 아니 ‘레이디 버드’는 다르다! 누구와 만나도 당당히 “안녕. 난 레이디 버드야.”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리고는 악수를 청한다.) 이게 인사다. 학교 선생님들이 자신을 “크리스틴~” 하고 부르면 즉시 “레이디 버드”라 불러달라고 정정할 정도다. 10대 사춘기를 통과하는 소년 소녀라고 해도 이 정도의 자의식은 확실히 남다르게 느껴진다.

이 ‘레이디 버드’도 여느 10대와 같은 고민을 한다. ‘대학 진학’으로 대변되는 진로 고민, 연애 고민, 우정 고민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와의 관계 고민.

그렇다. 이 영화는 청춘 성장물이다. 지금껏 수많은 소설, 드라마, 만화, 영화에서 반복해서 다루어졌고, 지금도 다루어지고, 앞으로도 다루어질, 바로 그 소재다. 그래서 식상한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게 이 영화의 매력이다.

일단은 코미디다. 나는 어떤 이야기든 어떤 결론이든 코미디를 기본으로 깔고 가는 걸 좋아한다. 그래야 잔뜩 쪼그라든 마음을 조금은 편안하게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2000년대 초반에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공감의 폭이 넓을 수밖에 없다. 자전적 이야기가 아니라고는 했지만,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한 — 주목받는 배우이기도 한 — 그레타 거윅(Greta Gerwig)이 1983년생이고, 그 시절 유행하던 팝송, 대중문화 등 그 시대의 ‘갬성’이 곳곳에 재현되어 있다.

이 누나가 그레타 거윅. 사진 참 멋있죠잉.

그리고 장소적 배경이 되는 ‘새크라멘토’. 캘리포니아의 주도이지만 LA, SF, SD에 비해 특색 없고 따분한 도시로 그려지는 이 동네의 풍경이 어쩐지 내가 나고 자란 ‘대구’라는 도시와 여러모로 닮은 느낌이랄까. 경관은 다르겠지만, 그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 역시 그 도시를 벗어나 서울로 가고 싶어한다는 점이 닮았달까.

그래서 나의 연년생 누이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고 감상을 묻고 싶었다. 우리도 ‘레이디 버드’처럼 이불킥 투성이 사춘기를 보내지 않았느냐고, 넉넉하지 못한 가정환경이 은근히 신경이 쓰이지 않았느냐고, 나를 꾸미기 위해 이런저런 부끄러운 거짓말들을 하지 않았느냐고, 부모님을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만 같던 때가 있지 않았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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