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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만 있으면 이 시궁창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by writer Peter 삐러 2019.06.23

또, 넷플릭스 본 이야기다. 이번 주말은 혼자 넷플릭스를 보는 시간이 좀 많았다. 그러다 물건 하나 건졌다. 바로 비트 Beats. (정우성 주연 영화 ⟨비트⟩가 아니다.)

비트 Beats (넷플릭스 오리지널 Netflix Original)

내가 좋아하는 요소가 모인 영화다: 힙합 그리고 성장. 이 두 요소를 섞으면 이런 뻔한 이야기가 나올 것만 같다. “시카고 빈민가에 사는 흑인 음악천재가 타고난 재능을 통해 큰 돈을 벌고 빈민가를 벗어나 행복하게 살아간다…”

단언컨대, 그런 흔해빠진 영화가 아니다!

주인공 어거스트(칼릴 에버리지)는 18개월 동안 학교를 나가지 않는다. 총격 사건으로 사랑하는 누나를 잃고, 심각한 트라우마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한 상황 설명이 나오진 않지만, 심각한 공황장애에 발작, 쇼크를 겪기도 한다. 어거스트의 어머니는 심장마비로 남편을 잃고, 길거리에서 총격으로 딸까지 잃게 되자 아들까지 잃을 수 없다며 어거스트가 집에서 머물도록 한다. 어거스트는 자신의 방에서 소음을 막아주는 헤드폰을 쓰고 음악 작업에 몰입하며 하루를 보낸다. 어거스트를 웃음짓게 하는 유일한 이벤트는 자신이 좋아하는 나이야(애슐리 잭슨)의 하교길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런 어거스트에게 로메오 리즈(앤서니 앤더슨)가 찾아온다. 어떻게? 실은 아주 우연한 만남이다. 듣는 귀 만큼은 좋은 전직 음악 프로듀서가 고등학교 보안관으로 일하는 경우가 현실에서 자주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필 그 고등학교 보안관이 장기 결석 학생의 가정을 직접 방문하여 그 학생이 만들고 있는 음악을 어렴풋이라도 듣게 되는 경우는 더욱 희박한 확률의 사건일 것이다. 아무튼 그런 일이 일어났다. (영화니까.) 로메오는 어거스트가 만드는 음악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채고 어떻게든 그와 접촉하려 노력한다. 창문에 매달려 그에게 새로운 영감을 줄 거라며 CD 1장을 건넨다. 그렇게 어거스트와의 교류가 시작된다.

로메오의 목적은 딱 하나. 이 천재 비트 메이커를 띄워 큰 돈을 만지고 다시 이 시궁창 같은 빈민가 — 정확히는 시카고(Chicago) 사우스 사이드(South Side) — 를 벗어나는 것이다. 별거 중인 아내(이자 어거스트가 다니는 고등학교의 교장, 그러므로 곧 자신의 상사)와도 다시 합치고 싶다. 그래서 그는 어거스트를 부추긴다. 어거스트가 나이야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그를 위한 곡을 쓰라고 한다. 그 곡을 나이야에게 전하라고 한다. 그리고 그 곡을 어거스트 몰래 갖고 나와서 랩을 입힌 다음 어거스트와 나이야가 함께 간 공연에서 라이브 무대로 보여준다. 신예 래퍼의 무대는 그야말로 대박이 난다.

물론 위기도 있다. 남편도 딸도 잃은 어거스트의 어머니는 하나 남은 아들마저 잃을까봐 두렵다. 어거스트가 세상 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두려워 하는 사람은 오히려 어머니 자신인지도 모른다. 로메오는 어거스트가 만든 음악을 들려준다. 어거스트의 어머니는 그 음악을 들으며 더는 아들을 집에 가둬둘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또 다른 위기도 있다. 스튜디오 프로듀서와 매니지먼트가 내통하여 로메오의 뒤통수를 친다. 로메오는 다시 큰 돈을 벌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으나 다시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갔다. 로메오의 아내는 이 모든 일이 어거스트를 위한 게 아니라 로메오 자신을 위한 것이라며 이제 그런 사기는 치지 말라고 요구한다.

방구석 프로듀서가 세상 속으로 뛰어드는 방법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은 프로듀서들이 앞다투어 자신의 비트를 사운드 클라우드라는 서비스에 올린다. 그런 프로듀서들은 그래도 세상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 받고 싶은 사람들이다. 아무리 재능이 차고 넘치더라도 그걸 세상 속에서 보여줄 의지가 없으면, 그 재능은 그저 혼자만의 보물일 뿐이다. 그것은 사용가치는 있을지언정 교환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 그런 그에게 귀가 밝고 비즈니스를 아는 프로듀서가 찾아온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어거스트에게 로메오가 그런 사람이다. 목적이 달랐을지언정 어거스트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이 로메오였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로메오는 어거스트에게 무엇이 필요한 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어거스트에게는 친구가 필요했다. 어거스트가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가고 싶도록 만들어 줄 친구. 의견을 주고 받고 감정을 나눌 상대 말이다. 어거스트의 어머니가 어거스트를 잃고 싶지 않다고 그를 계속 집에만 가둬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머니의 상처는 어머니의 것이고 어거스트의 상처는 어거스트의 것이다. 그것은 서로가 각자 해결하여야 할 문제이다. 자신의 상처를 남을 통해 치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영화는 어거스트, 로메오 그리고 어거스트의 어머니 모두가 성장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Gun Violence in Chicago

이 영화를 보면 ‘총기 소유’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어거스트의 누나가 총에 맞아 죽는다. 그 장면이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그 사건을 계기로 어거스트가 방에 쳐박히게 되었으니, 그렇게 극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면 이후의 스토리 설정이 설득력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사건 현장은 영화보다 더욱 처참할 것이다. 나 역시 그 장면을 본 뒤로, 영화에서 총이 조금이라도 등장하면 어거스트처럼 호흡이 곤란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등장인물이 밤 거리를 거니는 장면을 보면 괜히 불안했다. 그만큼 어거스트의 누나가 총에 맞아 죽는 장면이 충격적으로 느껴졌다. 영화에서 잠깐 등장하고 말지만 어거스트의 누나는 정말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어거스트는 그런 누나를 사랑하고 동경했다. 그녀가 남긴 짧은 훅을 어거스트가 반복해서 듣는 장면은 가슴 아프고 쓸쓸하다.

총기 사고로 희생된 수 많은 피해자들을 추모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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