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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족이 사는 법, 『어른은 어떻게 돼?』(박철현 에세이, 어크로스)

by writer Peter 삐러 2019.07.07

어른은 어떻게 돼? 일본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그 사이에 낳은 네 명의 아이와 함께 사는 아빠의 에세이. 팍팍한 이야기일 것 같지만 촉촉하다. 중년 아저씨가 쓴 글이 이렇게 촉촉하고 부드러운 디저트 케익 같다니. 이 가족이 사는 모습은 정말 이쁘다. 저자가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도 “부럽다!”라는 것이라고.

“일본을 보이콧하자”라는 구호가 나오는 시대 — 뉴스를 보다 내가 한 2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왔나 싶었다 — 에 살고 있는지라 아무래도 조심스럽지만, 이 책만 놓고 보면 일본 ‘사회’에는 우리가 배울 점이 여전히 많다. 더 이상의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 마냥 부러워만 하지 말고, 우리도 우리의 ‘사회’를 가꾸기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

아래는 이 책을 읽으며 책 귀(dog's ear)를 접어둔 부분:

  • "미우야, 넌 공부가 뭐라고 생각하냐?" 라고 물은 적이 있다. 미우가 3학년이었을 때다. 그때 미우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하기 싫은 것."
    너무나 간명하고 확실해서 웃음을 터뜨렸는데 미우가 다시 물어온다.
    "왜 웃어? 아빠?"
    "아냐. 옛날 생각나서. 나도 너만 할 때 진짜 하기 싫었거든. 하하하." (37쪽)
  • 아이들은 직업의 귀천을 모른다. 직업의 귀천을 알려주며 '너는 저렇게 되지 마라' 혹은 '공부 하지 않으면 저렇게 돼'라는 말을 하면서 차별의 기준을 설정하는 이는 다 어른들이다. (61쪽)
  • 아침에 혼자 일어나 집안일을 할 때마다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에 빠져든다. 아내, 미우, 유나, 준 다들 새근새근 자고 있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본 후 몰래 부엌으로 가 음식을 만든다. 내 딴엔 조심한다고 하지만 덜그럭덜그럭 소리가 난다. 그러다가 문득 깨닫는다. 아, 이 소리가 그 소리구나. 아주 오래전, 생선가게를 하는 어머니가 새벽 어시장에 나가시기 전에 나와 누나의 밥을 준비했던, 잠결에 들려왔던 어머니의 소리. (75쪽)
  • 부모도 사람인지라 서넛 낳아서 기르다 보면 더 마음에 드는 아이가 있기 마련이다. 나도 특별히 좋아하는 아이가 물론 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마음으로만 간직해야 한다. 흔히 하는 실수가 '비교'다. 언니만큼만 해라, 동생만큼만 해라, 쟤는 저렇게 잘 하는데 넌 이게 뭐니 등등. 이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비수가 되어 심장을 후벼 판다. (85쪽)
  • 참고로 나는 절대 아이를 때리지 않는다. 내가 많이 맞아봤기 때문이다. 그런 유년시절을 돌이켜보면 맞는다고 뭔가를 제어하고 그러진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삐뚤어졌다. 이 시간에 집에 가봐야 맞을 게 뻔하니까 아예 외박을 했던 경우도 있었고, 그래서 아이들을 때린다고 해서 아이들이 변한다는 생각은 아예 지웠다. (90쪽)
  • "합격, 불합격만 추첨통에 넣어놓으면 뒷사람들은 아예 추첨할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희박한 확률이긴 하지만 1번부터 27번까지 초기에 결정이 나버리면 뒷사람들은 추첨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모두가 공정하게 참여할 방법을 생각한 겁니다. 마지막 남은 번호가 속칭 '꽝번호'인데 이 꽝번호는 누가 뽑았죠?" (139쪽)
  • 모든 동네 행사들은 아이들과 일반 시민이 직접 참가하는 게 원칙이다. 나는 이 점이 한국의 행사들과 결정적으로 다르다고 느낀다. 누나가 공무원이라 일본의 축제나 행사에 대한 문의를 종종 해오는데 누나가 보내오는 행사 개요를 보면 시민들은 거의 '방관자적 참여자'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자치단체가 그 후원을 받는 시민단체가 명망가, 유명인을 초대해 행사를 주관하면 시민은 그 행사에 손님으로 참가하는 것이다. (142쪽)
  • "근데 오빠, 태권도 하게 되면 정말 수양, 인내, 정진 뭐 그런 거 길러져?" (163쪽)
  • 육아를 전문적으로 배우지는 않았지만, 별거 아닌 이런 대화가 분명 중요하다. 아이들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해야 한다. 다짜고짜 '하지 마'라고 말해버리면 아이는 일단 안 하기는 한다. 하지만 아이들도 이내 알아버린다. 부모가 나를 귀찮아하는 것을. 그리고 이해가 안 되기 시작한다. 왜 나를 귀찮아하는 것일까라며 혼자 고민한다. 그 고민을 부모에게 털어놓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고민의 원인 제공자가 부모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트라우마, 소외, 고독감은 그렇게 생겨난다. (168쪽)
  • 아, 여기 온 지 16년이 되었지만 일본 장례식에는 처음 참석해보는구나 하고. 그리고 슬퍼도 겉으로 내비치지 않고, 오히려 슬픔을 내보이는 것은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을. (229쪽)
  • 독립된 인격과 삶은 서로가 서로를 소유물로 생각하지 않는 마음가짐에서 나온다. 그래서 나는 항상 아이들에게 18세가 되면 독립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강조는 표면적으로는 아이들에게 다짐을 받는 것이고 또 그들을 세뇌하는 것이지만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애지중지 키웠던 아이들이 떠나간다는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해놓는 것이다. 나중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들을 구속하고, 속박하지 않겠다는 반복적 자기세뇌다. (260쪽)
  • 독립된 삶, 독립된 인격 별거 없다. 자기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자기 것을 지키는것. 그러면서 남을 배려하며 공동체 생활을 해나가는 것. 가족 역시 혈연으로 이뤄졌지만 공동체다. 각자의 역할이 있고, 그 역할을 해내며 자신의 것을 지켜나가야 한다. 그게 돈이든 자존감이든 뭐든. 그래야만 가족보다 더 큰 사회, 공동체에 나가서도 꿋꿋이 이겨낼 수 있다. 그걸 어렸을 때부터 의식적으로 스스로 가지게끔 유도하고 가르치는 것이 부모의 도리가 아닐까 한다. (2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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