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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을 하는지 묻지 마시고, 무슨 마음으로 일하는지 물어주세요, 『일하는 마음』 (제현주, 2018)

북-로그

by 박세 parxehee 2019.05.20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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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치를 꺼두고 푹 쉬어야 하는 주말인데 ‘일하는 마음’이란 제목이 붙은 책을 읽고 말았다.

 

작년 11월 출간 때부터 이 책을 먼저 읽은 지인들이 호평을 하길래 ‘나도 놓칠 수 없지’ 하는 심리로 리디북스에 사놓았던 것을 이제야 꺼낸 것이다.


저자는 “취재해서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도 아니고, 상상으로 이야기를 창조하는 예술가도 아닌” 자기 삶에서 길어 올린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글쓰는 마음’을 이야기 한다. “좋은 글을 쓰려면, 대단한 삶은 아니더라도 기만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자신의 삶 속에서 떠오른 얼굴들을 생각하며 글을 쓰는 것이 그 비결이라고 한다. 나의 삶을 아는 이들이 내 글을 읽게 되더라도 떳떳할 수 있도록 쓰겠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요즘 서점가에서 자주 보이는 일머리를 키워주는 소프트 스킬 따위를 알려주는 책은 아니다. 저자가 경험을 통해 쌓아올린 일하는 마음가짐, 삶의 자세를 독자에게 담담하게 전달하는 책이다.


일하는 여성으로서 자신의 주변에 ‘아직도’ 일하고 있는 여성 선배를 찾아보기 어려운 사람은 이 저자의 존재를 알아두는 것만으로도 큰 힘을 얻을 것이 분명하다.

 

아래는 이 책을 읽으며 그은 밑줄:

  • 망설이며 잡다한 탐색을 해오던 시간을 두어 해 보내고 이제 준비가 되었다고 믿게 된 것은 1킬로미터 트랙 정도는 구성할 힘이 생겼기 때문이다. 직장 일을 대체할 단 한 가지, 직장인 대신 이름 붙일 ‘무엇’은 찾지 못했지만, 내일 하루는 어떻게 다르게 살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게 나만의 1킬로미터 트랙인 셈이었다. 그렇게 1킬로미터씩 뛰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하는 막연한 믿음이 생겼다.
  • 예기치 못한 상황이 닥쳐도 잘 대처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오는 자유로움. 그것은 나의 존재를 보호할 능력이 내게 있다는 단단한 감각이다.
  • 내가 심각한 차별을 겪지 않았다면, 세상에 그런 차별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나마 차별이 적은 환경만을 선택해왔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좋은 것을 누렸고 그래서 불리한 게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여자라서 처음부터 소거해버린 선택지들이 있었고, 그게 바로 차별의 결과였다.
  • 핵심은 ‘나’의 ‘성장’이 아니라 내 눈앞의 과업(무엇)과 그것을 해내는 방법(어떻게)에 집중하는 것이다.
  • 성장은 과정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결과이고, 잘 수행된 과정은 세상이 성공이라고 정의하는 결과를 담보하지는 못해도 성장만은 가져다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수행의 과정에 지적으로 집중하며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의식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 사람은, 자신이 무엇에서 나아졌는지 발견하게 된다. 그걸 발견한 사람은 거기에 ‘성장’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 성과 평가의 중요한 원칙은 성과 평가의 결과가 평가 대상자를 놀라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성과 평가에 반영될 사항들은 미리 피드백을 주어 스스로 개선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 하루에도 크고 작은 결정을 수없이 내리며, 모든 결정이 최선이기보다는 늘 내게 주어진 현실 속에서 최적화일 뿐이라는 씁쓸함에 시달렸던 한 주였다. 그래도 일주일치 청소를 열심히 했다. 그게 언제인지는 몰라도 체육관을 떠나는 순간까지 그럴 수 있길 바란다.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을 시도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응원한다.
  • 막 40대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던 2016년, 나는 아직도 남아 있는 나의 ‘조심스러움’을 더 날려버리고 싶었다. 30대를 맞이하던 나로부터 분명히 멀리 와 있었지만, 아직도 좋은 것을 향하는 것보다는 나쁜 것을 피하는 것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쁜 것을 피하는 방법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며, 지금 나는 이제까지 온 것보다 훨씬 멀리 나아가고 싶어 한다는 점을 받아들였다. 그러니까 나는 여전히 겁이 났지만, 겁을 무릅쓸 만한 이유를 갖게 된 것이다.
  • 나는 더 훨씬 대담해졌고, 크고 작은 일들을 더 많이 벌였으며, 더 거침없이 말하고, 내 의견에 반대할 사람을 줄이기보다는 내 의견에 동의할 사람을 늘리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예전 같았으면 거절하거나 피했을 자리에도 더 많이 나선다(물론 더 하자면 더 할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정말 많이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 세상에는 스키를 잘 타는 사람이 엄청 많고, 내가 스키를 더 잘 탄다고 해서 세상의 스키가 발전하는 것도 아니다. 스키를 잘 탄다고 나에게 돌아오는 보상도 없다. 오히려 엄청난 시간과 돈만 쓰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고 싶다. 매일 스키를 탈수록, 어제보다는 몰라도 작년보다는 오늘 스키를 더 잘 타게 되었다고 느낀다. 실은 꼭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 매일 아침 슬로프의 첫 런에서 부족한 점을 발견하고, 그날의 마지막 런까지 조금씩 고쳐나간다. 산은 아름답고, 공기는 맑다. 나만 알고 있어도 충분한, 자기완결적 우주가 여기에 있다.
  • 피아니스트 시모어에게 피아노와 삶이 연결되어 있듯이, 내게는 스키와 삶이 연결되어 있다. 시모어는 좋은 삶을 통해 좋은 피아노로 가는 것이 더 쉽고, 동시에 좋은 피아노가 좋은 삶으로 가는 통로가 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말한다.
  • 사실 어제 들인 노력을 고스란히 쌓아서 다음 단계로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운동을 꾸준히 할 수가 없다. 사람의 몸은 항상적이지 않아서 계속 노력을 들이는데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시기가 있기 마련이다. 오히려 점점 나빠질 때도 있다. 한 발을 나갔다가 두 발 뒤로 다시 밀려가는 날이 부지기수다.
  • 시즌 첫날은 언제나 작년의 최고점에서 얼마나 후퇴했는지 실감하는 데서 시작하기 마련이다. 예전에는 그게 그렇게 속상하고 억울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계속 그런 마음이었다면 스무 시즌이 넘도록 스키를 탈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난 시즌의 마지막 날 내 돌이 어디에 있었는지, 심지어 어제의 마지막 활주가 어느 수준까지 올라갔었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오늘 아침 첫 활주에 비해 돌을 제법 굴려 올릴 수 있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매일의 스키를 마친다. 스키 타기를 여전히, 실은 매해 더욱 사랑하는 이유는 아침의 출발점이 어디였든, 그보다 조금 위로 굴려 올리는 하루의 시간이 거의 언제나 즐겁고 짜릿하기 때문이다.
  • 목표와는 별개로, 개인적인 층위 안에서 목표 설정이 되어 있고, 그 목표에 따라 계속 점검해야 한다는 거예요. 일의 경험을 자기 방식으로 해석하지 못하면, 자기 언어가 없이 분절적 경험만을 가진 상태로 머물 수밖에 없으니까요.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간판을 획득하고, 그 간판으로 자신의 경험들을 이해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스스로 언어를 만들고 자신의 경험들을 해석할 수 있는 틀을 규정해 나가는 것 외에 방법이 없어요.
  • 임파워먼트empowerment는 경영학의 조직관리 분야에서나 사회복지학, 정치학에서 많이 쓰이는 말이다. 그 대상이 스스로 능력과 권한이 있다고 믿을 수 있게, 그 믿음에 따라 능력과 권한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을 일컫는다. 이 단어를 풀어쓰자면 “힘power이 있도록 해주기/ 힘이 있는 상태에 놓이도록 해주기” 정도일 것이다.
  • 불편함을 나눌 수 있고, 머리를 맞대어 불편함을 해결할 방법을 함께 고민할 사람들이 있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에너지를 소모할 가치가 생기기 때문이다. 에너지 쓰는 걸 피하는 게 애초부터 목적은 아니었다. 다만 쓸모없이 에너지가 소진될 것을 두려워했을 뿐이다. 에너지를 써서 앞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보인다면 기꺼이 에너지를 쓸 수 있다.
  • 나를 중심으로 얼마큼의 동심원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는가. 그 책임감의 범위가 한 사람이 지닌 사회적 역량의 크기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게 스승이 되어주는 사람은 내게 새로운 책임감을 알게 해주는 사람이다. 요즘 내게는 스승이 참 많고, 그 덕에 모르는 길로도 나아갈 힘을 얻는다.
  • 취재해서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도 아니고, 상상으로 이야기를 창조하는 예술가도 아닌 나는, 내 삶에서 길어 올린 글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도 그것이 내가 할 수 있을 만한 말이 되려면, 자기기만 없이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곤 한다. (내 기준에서) 좋은 글을 쓰려면, 대단한 삶은 아니더라도 기만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자기기만 없는 글쓰기의 비결은 어쩌면 내 삶 안에서 떠올릴 수 있는 얼굴들, 내 삶을 비교적 잘 아는 얼굴들을 향해 쓸 수 있는 글을 쓰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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