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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블로거라니/무비로그

레프트훅 한 방으로 인생역전…이 될 리는 없겠지만, 백엔의 사랑 (百円の恋, 2014)

남들이 보기엔 참 답답한 삶이다. 이치코(안도 사쿠라 憤)는 올해 나이 서른둘의 히키코모리. 도시락가게를 하는 부모 집에 얹혀살면서 조카와 비디오게임을 하는 게 유일한 낙인 사람. 그래도 화를 낼 줄은 알아서 동생과 크게 다툰 후 돌발적으로 집을 나온 다음에는 편의점(백엔샵) 심야시간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간다. 표정도 억양도 없고, 불만도 불평도 없는 이치코의 삶은 ‘체념’으로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누가 봐도 노답 인생, 이치코

이치코는 매번 편의점에서 바나나를 사가는 ‘바나나맨’ 카노(아라이 히로후미 憤)의 초대로 그의 복싱경기를 보게된다. 서로 죽일 듯이 때리다가 경기가 끝나면 서로의 어깨를 다독거리는 바로 그 장면에 반한 이치코는 복싱을 시작한다. ‘서른둘’의 나이 때문에 올해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지만, 이치코는 링 위에서 시합을 해보고 싶다. 카노와의 짧은 동거가 영문도 모른채 끝이 나고,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부랑자가 가져가는 것을 방치했다는 이유로 편의점에서 해고를 당한 이치코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도시락가게 일을 돕는다.

프로복서 테스트를 한 번에 통과하고 드디어 성사된 첫 시합. 이치코는 전적 4전 전승의 ‘검은 표범’이라는 별명을 가진 청코너와 맞붙는다. 지금껏 땀흘리며 했던 연습들이 어떻게든 쓸모가 있기를 바랐지만, 링 위에 선 홍코너 이치코는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두드려 맞기만 한다. 그래도 처절하게 버티고 버틴 이치코. 가까스로 회심의 레프트훅 한 방을 날린다!

그러나 그 한 방으로 경기가 뒤집히는 ‘영화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청코너의 어퍼컷에 그대로 뻗어버린 이치코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다음 더 싸울 것이라며 발광해보지만, 이미 경기는 끝나버렸다. 정신을 차린 이치코는 청코너에게 다가가 어깨를 도닥여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경기를 보고 감동한 가족들이 이치코를 찾아와 격려한다거나 감동을 쥐어짜는 장면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피멍이 들어 엉망으로 부어 버린 얼굴로 거울을 보던 이치코는 짐을 싸서 경기장 밖으로 나온다.

이치코가 링에 오를 때 등장하는 음악은 “백엔 백엔 백엔 생활, 싸요 싸요 뭐든 싸요!” 이치코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백엔샵의 로고송이다. 일단 터져나오는 웃음과 함께 대체 왜 이 노래를 골랐을까 궁금할 새도 주지 않고 이치코는 답한다. “저는 백엔짜리 여자니까요.” 이치코는 자신의 삶을 어설프게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아픔과 상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값싼 동정을 바라며 과장하지 않는다. 마치 정직하게 뻗는 스트레이트 펀치 같다.

비록 남들이 보기에는 보잘 것 없는 “백엔짜리”의 삶이라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 단 한 번도 ‘성공’을 꿈꾸지 않으며 살았고, 딱 한 번 꿈꾸었던 승리조차 이루어내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를 염세적인 냉소나 작위적인 비장감 없이 그려낸 각본과 연출이 마음에 들었다. 그 이야기들을 ‘진짜’의 무게감으로 연기해 낸 강렬한 눈빛의 안도 사쿠라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