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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블로거라니/북로그

내 어머니의 연대기 (이노우에 야스시)

서가를 거닐다 '어머니'라는 글자가 박힌 책을 볼 때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일본 국민작가'라는 이노우에 야스시가 쓴 ⟪내 어머니의 연대기⟫를 집어든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꽃나무 아래에서⟩, ⟨달빛⟩, ⟨설면⟩, 이 세 단 편은 몇 년의 간격을 두고 쓰여지고 발표되었다. 이들을 묶어 «내 어머니의 연대기»라는 책으로 펴낸 것이다.


그렇다고 이 단편들이 실제로 어머니의 삶의 연대기를 전부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의 삶에 대한 기록이 시작된 것은 순전히 아버지의 죽음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의 죽음은 저자에게 지금껏 가리워 있던 죽음이라는 존재를 마주하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였다. 이 계기에 관하여 저자가 쓴 표현을 아래에 옮겨봤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참 멋스럽다. 부모라는 존재 덕분에 자식은 죽음과 거리를 둘 수 있게 된다.


살아 계셨던 아버지가 죽음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역할을 해주고 있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 나는, 아버지도 아직 살아 계시는데 뭘, 하고 생각했다. 물론 의식하지 않았지만 그런 기분이 마음속에 잠재해 있었기에 자신의 죽음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자, 갑자기 죽음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막이 사라지고 시야가 트이면서 어쩔 수 없이 죽음이라는 해면(海面)의 일부를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다음은 나라는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처음으로 깨닫게 된 일이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는 것만으로 자식인 나는 아버지로부터 든든하게 보호받고 있었던 것이다. (19쪽)


내 어머니의 연대기 - 8점
이노우에 야스시 지음, 이선윤 옮김/학고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