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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도 슬픔도 모두 나의 것, 잘못된 감정은 없다, 아파도 아프다 하지 못하면 (최기홍)

북-로그

by 박세 parxehee 2018.09.05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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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 아이의 감정을 포착하고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 읽어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작업을 ‘감정 코칭’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작업이 말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은 ‘감정 코칭’을 잘 하려면 부모가 먼저 자신의 감정에 대한 감정, 무의식적 반응인 ‘초감정’(meta-emotion)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과정을 통하여 먼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어야 아이에게 감정 코칭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빠로서 저는 제 자신의 감정에 대하여 그다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머리로는 ‘아이에게 감정 코칭을 해주어야겠다’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제 감정 때문에 감정 코칭은 시도도 못하고 실패로 돌아가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만났습니다.


아파도 아프다 하지 못하면. 이 책의 부제는 ‘감정 마주하기 수업’입니다. 저자는 임상심리학자로서 대학에서 ⟨감정과 삶⟩이라는 이름의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이 강의 목표는 수강생이 ‘감정의 중요성과 영향력’에 관하여 배우고, ‘좋은 감정을 느끼기’(feeling good)에 머무르지 않고,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feeling everything).


모든 감정은 없애거나 강압하거나, 극복할 대상이 아니라 

느끼고 경험해야 할 대상입니다.

(p.205)


이 책을 읽고 나서, 갓 성인이 된 대학생 때 이 강의를 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이렇게 말랑말랑해 보이는 강의는 무조건 피했습니다. 겉멋이 잔뜩 들어 어딘가 심오한 분위기를 풍기는 강의들만 찾아서 들었습니다. 인간의 감정만큼이나 심오한 주제가 또 없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었네요.


그래서 저는 이 책을 뒤늦게 다시 대학으로 돌아간 만학도의 심정으로 수업을 청강하듯이 읽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배움의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절실함으로요.


왜냐하면, 살다 보니 제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해서, 그렇게 알아차린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서 끙끙 앓던 순간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감정맹이 되어버리면 본인만 답답한 것이 아닙니다. 배우자, 가족,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까지 속이 시커멓게 썩습니다. 결국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면서 가까스로 자신의 감정을 풀어놓을 방법들을 찾게 되지요. 이런 시행착오를 피하거나 줄이려면 미리 배우고 익히는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고 가장 깊이 공감했던 부분은 바로 ‘슬픔’에 관한 저자의 설명이었습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 2015)을 기억하시나요? 11살 소녀 ‘라일리’의 머릿속 다섯 감정들(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이 등장하는 픽사(Pixar)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입니다. 저는 그냥 재밌게 본 애니메이션에 불과했는데, 저자의 해설을 들어보면 이 영화에는 매우 의미심장한 대목이 있습니다.


영화에서  ‘기쁨이’와 ‘슬픔이’가 갈등을 겪고, ‘슬픔이’가 감정 컨트롤 본부를 떠나면서 주인공 소녀 ‘라일리’의 감정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결국 ‘기쁨이’가 ‘슬픔이’를 찾아 기억 깊숙한 곳까지 찾아가지만, ‘슬픔이’는 주인공 소녀 ‘라일리’를 위하여 자신이 없는 편이 낫다고 하며 돌아가지 않으려고 하죠.



저자는 이 대목을 언급하며 이 영화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슬픔이’라고 합니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슬픔을 포함한 모든 감정이 소중하다는 것이죠. 이 영화에서 주인공 ‘라일리’를 가장 성장시키는 감정은 다름 아닌 ‘슬픔’입니다. ‘라일리’는 정든 친구와 동네를 떠나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오면서 느낀 상실감을 인정하고 이를 부모에게 표현함으로써 한 단계 성숙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감정이 처리되지 않으면 다른 감정들도 같이 처리되지 않는다.

슬픔 같은 고통스러운 감정을 회피하고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 

긍정적인 감정도 사라지게 된다.

마음에 담은 슬픔을 언젠가 처리해야 기쁨도 나오기 시작한다.

(p.162)


슬픔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되도록 드러내지 않고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감정을 억누르면 잠시 그 감정을 잊을 수야 있겠지만, 영영 그 감정이 사라지게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감정은 굉장히 중요한 메세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그 메시지가 우리에게 전달돼,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감정은 포기하지 않습니다.”(33쪽) 억압된 것은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귀환합니다. 그게 심리학이 우리에게 주는 지혜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생각보다 감정 그 자체에 관하여 잘 모르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령, ‘슬픔’이 무엇인가? ‘화’란 무엇인가? ‘화’는 왜 나는 것인가? 이런 간단한 형식의 질문에 대해서도 쉽게 답하지 못하였습니다. 사실은 저는 제 자신의 감정 ‘상태’ 뿐만 아니고 감정의 ‘의미’ 그 자체에 관하여도 잘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감정’과 관련한 것을 ‘이성’을 활용해 책을 읽으면서 배우고 익힐 수 있을까요? 저자는 심지어 이성의 힘을 중시했던 계몽주의 철학자들도 결코 감정의 힘을 무시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들 마저도 이성과 감정의 대립을 상정하고, 이성이 감정을 억누르는 모습을 이상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감정을 보듬기 위한 이성의 역할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감정은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얘기한다.

이성은 감정이 알려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돕는다.

by 데이비드 흄


분명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이 책을 통하여 감정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나온 느낌을 받았습니다. 상황과 사건 속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봄으로써 나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아직 가야할 길은 멀겠지만, 이 책이 좋은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란 확신이 생겨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 이 글은 서평 이벤트 참여를 통해 책을 증정받은 후에 작성되었습니다. 증정 여부와 무관하게 솔직한 감상을 적었습니다. 참고하여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좋은 책을 읽을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끝)


아파도 아프다 하지 못하면 - 8점
최기홍 지음/사회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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