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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하고 자유로우며 위대한 개인의 발견, 『어떻게 휘둘리지 않는 개인이 되는가』 (홍대선, 2018)

북-로그

by 박세 parxehee 2018.09.19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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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 스피노자,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니체. 누구나 한 번은 그 이름을 들어보았을 위대한 철학자 6인의 독특하고 유별난 사생활이 저자의 담백한 입담을 빌어 TMI급으로 펼쳐진다.

재미있다. 이 여섯 사람, 그 독창적 사상 만큼이나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다가 갔다. 게으름뱅이(?) 데카르트는 ‘10시간 취침 생활’을 했다. 스웨덴 여왕의 초청을 받아들여 “바위와 얼음 한가운데 있는 곰의 나라”로 가지 않았더라면 좀 더 오래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데카르트

성공한 무역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스피노자는 철학적 소신을 지키다 유대인 커뮤니티에서 추방당하고 렌즈 세공을 하며 평생을 빈궁하게 살았다. 그의 추종자들로부터의 후원도 최소한으로만 받아들였다. 고독한 ‘개인’이었지만, 끝까지 자유로운 ‘개인’이었다.

스피노자

시종일관 고독하고 우울했던 쇼펜하우어는 사람들의 관심과 존경을 원했다. 그는 자신보다 인기가 많은 헤겔에 복수하기 위해 푸들을 한 마리 들이고 ‘헤겔’이라는 이름을 붙여줄 정도로 괴팍했고, 이후 그 댕댕이에게 깊은 사랑을 느낄 정도로 순수했다.

쇼펜하우어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고 나니 그들이 남기고 간 철학적 유산에 다시 한 번 관심이 간다. 그들은 근대 철학의 단위인 ‘개인’을 정초하고 쌓아올리고 완성했다. 르네상스와 함께 잠자고 있던 중세를 흔들어 깨웠다.

덕분에 우리는 더는 존재의 이유를 신으로부터 찾지 않고, 우리를 위협하는 공동체에 굴종하지 않고, 우리 이성의 한계를 받아들이며, 육체와 의지에 부여된 약동하는 생의 에너지를 품고 “혼자서 칠흑 같은 어둠 속을 걸어가는” 존재가 되었다.

또 다시, ‘어떻게 살 것인가’는 우리의 질문이 되었다. 달라진 것은 이제는 그 질문의 답을 외부에서 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삶이 있을 뿐이고, 삶 속에서 답을 구할 뿐이다. 고독하지만 자유롭고 위대한 개인으로서.

한 가지 아쉬운 점. 서양 근대 철학자들의 삶과 사상을 잘 버무린 것까지는 좋았는데, 저자의 문체 상, 사실의 서술인지 수사적 과장인지 헷갈리는 대목이 몇몇 있었다:

“그는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나 자라고 공부하고 일하고 사망했다. 흡사 도시의 가로수나 시설물 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암기력 덕에 외국 도시의 다리를 나사 개수까지 설명할 수 있었다.”(p.150)

칸트가 대학에서 세계지리를 가르친 것은 사실일텐데, 그가 정말로 외국 도시의 다리를 나사 개수까지 설명을 했었다는 얘기인지, 아니면 그정도로 암기력이 뛰어났다는 얘기인지, 헷갈렸다.

에이, 당연히 후자겠지, MSG를 친 거겠지, 싶다가도, 칸트잖아. “서양철학의 제왕”이라 불리는 칸트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을 것 같지 않은가. 그런 대목이 책 곳곳에 등장하여, 차라리 사실을 서술한 부분에는 번거롭더라도 출처를 달아주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 책 덕분에 나는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다시 집어들 것이고, 칸트의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를 다시 펴낸 ‘굿윌’도 읽을 것이다. 이처럼 좋은 책은 다음 책을 부르고, 독서는 이어진다. 감히 이 가을에 어울리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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