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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어디에도 없었던 방법으로』 (테라오 겐, 2019), 발뮤다(BALMUDA) 창업자 테라오 겐(寺尾 玄)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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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하는 Peter 삐러 2019. 3. 28.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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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발뮤다(BALMUDA) 창업자 테라오 겐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고교 자퇴 폭주족 소년 '가전계의 애플' 만들다).

"죽은 빵도 살린다"는 발뮤다 토스터기에 관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다. 내 관심사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 '발뮤다'(BALMUDA)라는 회사를 만든 창업자 테라오 겐의 이야기는 달랐다. 나는 인터뷰 기사에 소개된 그의 삶에 매료되었다.

피 끓는 시절 엇나가야 멋지다고 생각했다. 중학생 폭주족. 밤마다 불량배와 어울려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어둠 속으로 전력 질주했다. 아들에게 반항기를 물려준 아버지는 부채 의식 갖긴커녕 일탈을 부채질했다. "사내로 태어났으니 나쁜 짓도 해봐야지."

고 2 어느 날, 학교에서 문·이과를 나눌 용도로 장래 희망 설문지를 나눠 줬다. 가진 것이라곤 분출하는 호르몬과 가능성밖에 없는 나이였다. 평생 직업을 써내라는 건 앞으로 펼쳐질 무한한 가능성에 내리는 사형선고 같았다. 이후 학교생활에 회의는 커갔고, 결국 자퇴했다.

교실을 뛰쳐나온 소년은 스페인으로 향했다. 꼬마 때부터 탐닉했던 헤밍웨이의 숨결이 밴 나라였다. 경비는 어머니가 남긴 사망 보험금. 대학등록금으로 쓰려 했던 돈이었다. 아버지는 이번에도 등 떠밀었다. "황야로 향하라." 열일곱 살 소년은 '여행'이라는 대학에 진학해 1년간 지중해 일대를 돌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15/2019031501592.html

성인이 되기까지 부모가 정해준 길을 그대로 따라 걷는 대다수의 삶과는 많이 달랐다. 다른 이야기는 없을지 궁금했다. 테라오 겐의 자서전 "가자, 어디에도 없었던 방법으로"를 찾아 읽었다. 리디셀렉트 덕분에 바로 구해서 볼 수 있었다. 

아래는 이 책을 읽으며 기억하고 싶었던 부분:

  •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어도, 두려움을 딛고 인생의 즐거움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어떤 문제나 도전의 기회와 마주했을 때, 그것의 가능 여부를 고민하지 않는다. 누군가 “그건 무리야.”라고 말한다면 “왜?” 하고 반문할 테니까.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일부가 세상에 혁신을 일으킨다. 그들은 본인의 흥미를 위해서만 일하는 제멋대로인 사람들이고, 자신들의 머릿속에 스위치가 들어왔을 때에만 움직인다. 그러나 그들은 사회의 폐색을 무너뜨리는 데에 앞장서고 다음 시대로 인류를 이끌어간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어머니의 사고 경위를 들은 뒤에도 어머니가 어리석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보다 자신의 인생을 내건 어머니의 도전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 자유란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말하는 동시에 결정에 따른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여행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은 자신감이 아니었을까? 그것은 성공이나 어떤 일을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다른 종류의 거였다.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감각을 기르면서 나는 살아 있고,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가고 싶은 장소를 선택하고, 스스로를 지켜내고, 목적지까지 이동한다. 아름다운 장면을 수도 없이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일을 한 건 아니지만, 살아가고 있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게 됐다. 나는 살아 있다고.
  • 원래 그랬던 게 아닐까? 어떤 장소나 집단에 정착해서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라고 생각하는 게 틀렸던 건지도 모른다. 변화가 많고 불안정해도 여행이,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는 인생이, 우리의 자리인 것이다. 오히려 소속이나 직업 같은 것들이야말로 불안정한 것이 아닌가? 몸뚱이 하나와 발을 딛고 서 있을 지면만 있다면 인간은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여행을 통해 그 사실을 온몸으로 배웠다.
  • 인정받는 것과 내가 꼭 하고 싶은 것, 이 둘 중에서 나는 후자를 택했다. 그것이 지난 실패를 통해 얻은 최대의 교훈이기도 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 하고자 하는 것을 끝까지 해보지도 않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했다니, 그 의도부터 틀려먹었다.
  • 꿈이 끝났다는 건 가능성을 잃었을 때가 아니다. 애초에 우리는 가능성을 잃을 수 없으니까. 꿈은 그것의 주인이 열정을 잃었을 때에야 비로소 끝을 맞이한다.
  •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까? 아니다, 음악 활동을 하는 동안 나는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의 즐거움을 알았다. 꿈이란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있다는 사실도 배웠다. 성공도 실패도, 사람을 성장하게 한다. 그리고 실패는 사람이 더욱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한다.
  • 물건을 만드는데 필요한 숫자에 대해서도 배웠다. 지름 1센티미터의 구멍에 정확히 지름 1센티미터짜리 원주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어떤 빈자리에 다른 무언가를 넣어야 할 때는 아주 조금이라도 크기 차이가 있어야 한다. 물건을 만드는 세계에서는 ‘찰지게 딱 들어맞는다’는 표현이 있는데, 이때 크기 차를 계산하면 0.025밀리미터가 된다. 제작하는 사람에게 이 크기 차이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도면에 ‘공차公差’라고 불리는 수치를 표기해야 한다.
  • 티타늄을 깎아 열쇠고리를 만들어보고, 그걸 야후 옥션에서 팔아보려고 나름의 브랜드를 만들기도 했다. 브랜드는 내가 앞으로 하려는 일 중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던지라 꽤 고심하여 만들었다. 나는 단순히 물건을 만들고 싶은 게 아니었다. 디자인만 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하드웨어나 기술을 이용해 내 안의 창의력을 표현하고 싶었다. 뮤지션에게 노래가 있듯이 완성한 제품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는 법이다. 마치 록 밴드 같은 브랜드, 나는 그런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 이 실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선풍기 바람과 자연의 바람이 풍속부터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산들바람’이라고 느끼는 자연 속의 바람은 아주 느리게 이동하는 반면, 선풍기 바람은 ‘약풍’이라고 해도 그 속도가 압도적으로 빨랐다.
  • 물 밑으로 가라앉는 게 빠를지, 엔진이 완성되는 게 빠를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물이 차오르는 배 안에서 엔진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 “당신이야말로 요즘 시장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건 아닙니까? 마케팅을 잘 안다고 그 자리에 앉아 계시나본데, 당신이 한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지금 이곳에 와 있지 않았을 테죠. 그 분야에서 충분한 성과를 내고 있는 사람이니 여기저기 부르는 곳이 많아 바쁠 테고, 이런 곳에서 심사나 하고 있을 여유가 없을 테니까!”
  •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큰 소리를 치는 나에게 그들은 파산을 코앞에 두고 아집을 부린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그것은 아집이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지난 이십 년 동안 변치 않고 추구해왔던 것은 나와 사회의 접점이다. 나는 그 접점이 내 손에 있는 선풍기 날개가 쥐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것이 사회로 나갈 문을 열어줄 거라고 확신했다. 나에게 있어 그것은 고집이 아니었다. 내가 살아가는 의미였다.
  • 그런데 이걸 팔아버린다면,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사람에게는 절대 팔아서는 안 될 무언가가 하나쯤은 있는 법이다.
  • 꿈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지만, 꿈을 꾼 사람이 느끼는 만큼 다른 사람이 느낄 수는 없다. 나는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꿈을 꿨다. 그 꿈을 위해 정말 많은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동안의 경험에서 미루어봤을 때, 이번 꿈은 틀림없는 진짜다. 내가 가진 거라고는 꿈뿐이었다. 탈탈 털어도 나올 건 그것밖에 없다.
  • 멋진 선풍기라는 아이디어는 있다. 디자인도, 설계도, 최종 샘플도 완성됐다. 다음 단계는 팔린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이다. 그걸 증명하면,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라고 믿었다. 팔린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하냐고? 그야 실제로 주문을 받으면 되는 일이다. 그 이상의 증명은 없다.
  •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해 있는 힘을 다해 달리다보니, 언제부턴가 내 안에는 상쾌한 기분만이 남아 있었다. 그토록 내가 가진 생명을 온몸으로 느끼며 보낸 날들은 없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왜 이렇게까지 잘해주시나요?” 하고 묻는 내게 그는 “이렇게까지 열의를 다하는 사람을 본 게 처음이라서.”라고 대답했다.
  • 이건 아니라고, 멈춰서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나 하나를 위해 그럴 수는 없었다. 도망치는 건 물론이고, 잠시나마 주눅이 드는 것마저 용서받지 못할 일이었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때도, 그렇지 못할 때도, 아무리 무서워도 중심을 잡고 서 있어야 했다. 책임을 져야 했다. 이건 내 꿈이니까, 그리고 그 꿈에 많은 사람을 끌어들였으니까.
  •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될지도 모른다. 일 년 반 전에, 꿈의 선풍기를 위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 아이디어가 태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다. 겨우 창업한 회사가 망할 것 같아서다. 왜 회사를 창업했냐면 음악이라는 꿈은 끝나버렸지만, 열정은 식지 않아서였다. 이 열정은 에스파냐에서 보낸 시간들과 부모님의 가르침을 통해 내 안에서 자라났다. 아니, 가르침이라기보다 그들에게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 곡이 끝나고, 몸도 마음도 붕 뜬 상태로 무대 중앙까지 걸어나갔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객석을 봤을 때, 나는 괴성을 내지르고 싶었다. 뭐야, 여기였어? 여기라면 잘 알고 있지! 눈부신 조명이 나를 비추었다. 그 아래로 어두워진 객석에 수많은 사람이 앉아 있다. 서 있는 사람들도 있다. 모두 내가 서 있는 이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
  • 인생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다. 언제나, 누구나, 그 가능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내가 가진 것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건 틀린 생각이다. 아무리 내게 불리한 상황이라 해도 역전할 기회는 늘 있다. 할 수 없을 때도 있지만, 할 수 있을 때도 있다. 그리고 나는 내 인생 전부를 걸었을 때에야 비로소 역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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