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쇄를 찍자!⟩ 제1화가 기대 이상으로 재밌어서 연달아 제2화, 제3화를 보았다. (휴일은 좋은 겁니다, 여러분.)


먼저, 제2화.

제1화에서 아주 잠깐 등장했던 만화 영업부에서 ⟪바이브스⟫를 담당하고 있는 사원 “유령” ‘코이즈미 준’(서강준사카구치 켄타로)가 에피소드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만화를 즐기는 인구가 점차 감소하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 만화 영업이라는 일이 무슨 가치를 지닐까’라는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그 생각이 곧 행동으로 이어져 영업 접점인 서점 직원과의 커뮤니케이션 역시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한다. 그래서 “유령”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코이즈미’는 몇 년째 부서 이동 신청서를 내고 있다. 그런데 영업부장이 “정보지 편집부로 가서 무슨 기획을 어떤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인가?”하고 단도직입 물어도 딱히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것을 보면 정보지 편집 업무에 또 대단한 소명의식이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닌 듯 하다. 단지, 만화 영업은 본인과 맞지 않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일 뿐.

이때 영업부장 ‘오카 에이지’(나마세 카츠히사)가 명대사를 시전한다. “본인의 위치를 모르는 녀석은 어디에도 갈 수 없다.” 이 대사를 듣고 머리를 얻어 맞은 듯 했다.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는 누구인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나는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지,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는가. 그걸 출발점으로 삼지 않고서 갈 수 있는 곳이란 대체 어디일까. 그 어딘가에서는 나는 또 누구일 것이며, 나는 또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이 “유령” ‘코이즈미’에게 새로운 일이 떨어진다. ⟪민들레 철도⟫라는 작품의 판매부수가 뒤늦게 올라가고 있었던 것. 숫자를 살펴보던 영업부장은 담당직원인 ‘코이즈미’에게 그 원인을 아느냐고 묻는다. 관심이 없으니 알 턱이 있나. 영업부의 다른 직원들이 최근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했는데 이 재미있는 캐릭터의 등장으로 뒷심을 좀 받은 것 같다고 설명한다. 때마침 다음 달 단행본 제3권 발매가 예정되어 있다. 영업부장 ‘오카’의 눈이 반짝인다. 직접 ⟪민들레 철도⟫ 단행본 1, 2권을 읽어본 그는 감명을 받는다. (이 부분도 좋았다.) ‘오카’는 영업부 직원을 불러 모은다. 다음 달 ⟪민들레 철도⟫ 제3권의 발매에 맞춰 전국 서점 전시 이벤트를 기획하고 영업부 전체가 푸쉬하자고 선언한다. 이 업무에 편집부 ‘쿠로사와’가 합류하면서 ‘코이즈미’와 짝을 이루게 된다.

이후의 전개를 예상하기는 크게 어렵지 않다. ‘쿠로사와’와 ‘코이즈미’가 함께 맡은 업무는 직접 서점을 돌아다니면서 전시 이벤트 협조를 요청하는 것. 잔뜩 기합이 든 ‘쿠로사와’의 넘치는 활력으로 영업 판촉 활동에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되고, 이를 지켜보던 의욕 제로의 ‘코이즈미’가 점점 그 에너지에 물들면서 자신의 내면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게 되어 적극적인 영업맨으로 변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코이즈미’는 ‘쿠로사와’의 아이디어를 적극 차용해 만화 코너를 넘어 철도, 여행 코너에도 ⟪민들레 철도⟫를 진열하는 홍보 방안을 주장한다. 평소 만화 코너에 가지 않는 독자층 가운데 분명 이 작품을 좋아해줄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면서. 요즘 말로 하면 표면적인 주제 분류를 따르는 것이 아닌 라이프스타일 중심 분류로 는 진열되도록 하자는 것이랄까. 이 홍보 방안이 영업부장에게 채택되고 ‘코이즈미’는 이 방안이 추진될 수 있도록 서점과의 교섭을 맡게 된다. 이 전술이 적중한 덕에 단행본 판매는 호조. TV에 소개되기에 이른다.

이때 영업부장 ‘오카’는 ‘코이즈미’에게 자신의 업무수첩(일명 비밀노트)를 보여준다. 이 업무수첩에는 각 서점 만화 담당자들의 프로필, 취미 같은 것이 적혀있다. 감탄하며 수첩을 넘겨보는 ‘코이즈미’에게 또 한 번 명대사 시전.

“우리가 파는 건 책이지만 상대하는 건 사람이야.
전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마. 우리의 마음을 그분들이 받아 손님들에게 전해주시는 거다.
만화가 재미있다고 해서 꼭 잘 팔리는 것은 아니다. 혼자 팔리는 작품은 없어.
팔린 작품 뒤에는 반드시 그 작품을 판 사람이 있다. 바로 우리가 파는 거야.”

제대로 자극을 받은 ‘코이즈미’는 원거리에 있는 서점들에 보낼 편지 인사말도 정성스럽게 준비하여 작성한다. ‘민들레’ 그림이 그려진 편지지, 스티커도 준비한다. (이걸 골라준 센스 있는 사람은 물론 ‘쿠로사와’.) 이때의 독백. “입사한 지 3년. 그동안 나는 뭘 했던 걸까. 열심히 하자. 지금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난 평생 유령인 채 살아야 한다.” 스스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 공부와 맞지 않다고 생각하며 어쩐지 겉돌고 있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듯한 말이었다. 울림이 있었다.

이번 화는 만화가의 손을 떠난 작품이 편집자의 손을 거쳐 서점을 통해 독자의 손에 전달되기까지, 특히 ‘영업’이라 불리는 활동의 특성을 담아냈다. 영업부서 탈출을 꿈꾸던 ‘코이즈미’가 내적 변화를 일으키며 적극적인 영업 사원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쫓는다. 좋은 만화가 더 많은 독자에게 알려질 수 있도록, 만화가와 영업부서 사이에서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하는 일 역시 ‘편집자의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글이 길어져서, 제3화는 다음에.

⟨중쇄를 찍자!⟩ 제1화는 어린시절 유도 만화를 읽고 유도 선수가 되기로 결심, 대학까지 쭉 유도만 하던 ‘쿠로사와 코코로’(쿠로키 하루)가 주간 코믹지 ⟪바이브스⟫ 편집부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고, ‘드래곤’ 시리즈로 30년간 주간지 연재를 이어오던 거장 만화가 ‘미쿠라야마 류’(코히나타 후미요)가 돌연 연재 중단을 선언하여 편집부가 발칵 뒤집히는 이야기를 다룬다. 

(※ 이하 스포일러 주의)

대책 없이 밝고 명랑하고 활기와 박력이 넘치는 신입사원 “새끼곰” ‘쿠로사와’의 매력이 한껏 묻어남과 동시에 ‘편집자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첫 여정이 담긴 에피소드다. 첫 장면, 그가 면접에 임하며 했던 독백이 인상적이다. 

“면접은 유도와 같다. 익숙해지면 보이기 시작한다. 상대방 마음의 움직임. 숨결. 상대가 숨을 뱉는 순간에 기술을 건다.”

그의 진면목을 대번에 알아본 사장님의 한마디 역시. “바둑 기사든 마작사든 스포츠 선수든 정말 강한 승부사는 모두 체축이 흔들리지 않아요. 그런 인간이 무운을 가지고 있죠. 우리 출판업계도 승부의 세계입니다.” (사장님, 면접 당일 청소부로 변장하신 건 아무래도 클리셰였어요.)

30년간 주간지 연재 마라톤을 이어 온 거장 만화가 ‘미쿠라야마 류’가 갑작스럽게 연재를 중단한 것은 그의 문하생 ‘칸바라’군이 그의 작품에 대한 인터넷 상의 뒷담화 — 주로, 작화가 붕괴되고 있다는 지적과 오랜 연재로 인해 한물 간 작품이라는 독설들 — 을 모아 팩스로 전송했기 때문이다. 충격이었을까. 충격이었겠지.

그러나 그가 충격을 받았던 것은 단순히 나빠지고 있는 그림에 대한 비난 때문이 아니었다. 

“그림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그림을 그리고 있었어. … 하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만화를 통해 계속 전하려고 했던, 인간은 소중하고 아름답고, 다정함이야말로 인간의 강함이라는 것. 그게 전혀 전해지지 않았어. 그들에게도… 계속 옆에 있었던 칸바라군에게도… 한심해. 정말 나 자신이 한심해.”

실의에 빠져 집필을 중단한 거장 만화가가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도울 방법은 무엇일까. 이제 막 입사한 막내이지만,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해보고 싶어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쿠로사와’는 신입사원 연수시절 연을 맺었던 서점에 들러 점원과 대화를 나누고, 그가 만든 특설 매대를 유심히 관찰하던 중 ‘유레카 모멘트’를 맞이한다. 그리고 이를 편집부에 알리기 위해 전속력으로 뛰어간다.

“스포츠 선수는 트레이닝을 매일 게을리하지 않는다. 가능한 한 오래 강한 선수로 있기 위해 근력을 유지하는 노력을 쌓는다. 그런데도, 나이를 거스르는 건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늙어감에 따라 근력은 떨어져 간다.”라는 독백과 함께. 전혀 속도가 떨어지지 않은 채 바람을 가르며 뛰어가는 ‘쿠로사와’의 모습에 썩 잘 어울리는 대사였다.

‘쿠로사와’의 아이디어를 들고 만화가를 찾아간 부편집장 ‘이오키베 케이’(오다기리 죠)가 조근조근 진심을 전달하는 장면. 

“저를 포함한 편집부 전체가 오랜 세월에 걸쳐 선생님께 응석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혼자서 훌륭한 작품을 계속 만들어내시는 선생님께 저희는 경외심을 품으며 동시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원고를 받을 수 있는 상황에 익숙해졌던 겁니다. 그렇게 집필을 그만두실 정도로 힘들어하고 계실 때 의논조차 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편집자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의 힌트가 되는 대사였다. 힘을 쫙 뺀 연기가 일품이었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계획된 물량을 빠르게 소진하고 다시 한 번 인쇄에 돌입하는 일은 여러모로 기쁜 일일 것이다. 출판인에게 ‘중판’(重版)이란 승소, 재계약, 계약 연장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자신의 능력을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이니. 또, 자신이 좋다고 여기는 작품이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니. 참고로, 극중 편집부 직원들이 저녁을 먹은 식당 이름도 ‘중판’(重版)이었다. 우리는 ‘중판’이나 ‘중쇄’(重刷)보다는 ‘증쇄’(增刷)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쓰는 것 같지만.


이걸 보려고 왓챠플레이에 가입했다. 가입 첫 한 달은 무료 이용이라는 은혜로운 프로모션. 가입 단계에서 기존 작품에 대한 별점 평가를 하면 나의 취향을 분석해준다기에 10개 정도만 하면 되려나 했더니 개수가 쌓일수록 상태메시지가 달라지더라. 「이왕 하는 김에 100개를 채웁시다」라는 둥. 그래서 하다보니 299개를 했는데, 역시 이왕 하는 김에 300개를 채우려고 해도 정말 10분 가까이 스크롤만 내렸는데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작품들만 나오길래 이쯤에서 멈췄다.

남들이 보기엔 참 답답한 삶이다. 이치코(안도 사쿠라 憤)는 올해 나이 서른둘의 히키코모리. 도시락가게를 하는 부모 집에 얹혀살면서 조카와 비디오게임을 하는 게 유일한 낙인 사람. 그래도 화를 낼 줄은 알아서 동생과 크게 다툰 후 돌발적으로 집을 나온 다음에는 편의점(백엔샵) 심야시간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간다. 표정도 억양도 없고, 불만도 불평도 없는 이치코의 삶은 ‘체념’으로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누가 봐도 노답 인생, 이치코

이치코는 매번 편의점에서 바나나를 사가는 ‘바나나맨’ 카노(아라이 히로후미 憤)의 초대로 그의 복싱경기를 보게된다. 서로 죽일 듯이 때리다가 경기가 끝나면 서로의 어깨를 다독거리는 바로 그 장면에 반한 이치코는 복싱을 시작한다. ‘서른둘’의 나이 때문에 올해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지만, 이치코는 링 위에서 시합을 해보고 싶다. 카노와의 짧은 동거가 영문도 모른채 끝이 나고,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부랑자가 가져가는 것을 방치했다는 이유로 편의점에서 해고를 당한 이치코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도시락가게 일을 돕는다.

프로복서 테스트를 한 번에 통과하고 드디어 성사된 첫 시합. 이치코는 전적 4전 전승의 ‘검은 표범’이라는 별명을 가진 청코너와 맞붙는다. 지금껏 땀흘리며 했던 연습들이 어떻게든 쓸모가 있기를 바랐지만, 링 위에 선 홍코너 이치코는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두드려 맞기만 한다. 그래도 처절하게 버티고 버틴 이치코. 가까스로 회심의 레프트훅 한 방을 날린다!

그러나 그 한 방으로 경기가 뒤집히는 ‘영화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청코너의 어퍼컷에 그대로 뻗어버린 이치코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다음 더 싸울 것이라며 발광해보지만, 이미 경기는 끝나버렸다. 정신을 차린 이치코는 청코너에게 다가가 어깨를 도닥여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경기를 보고 감동한 가족들이 이치코를 찾아와 격려한다거나 감동을 쥐어짜는 장면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피멍이 들어 엉망으로 부어 버린 얼굴로 거울을 보던 이치코는 짐을 싸서 경기장 밖으로 나온다.

이치코가 링에 오를 때 등장하는 음악은 “백엔 백엔 백엔 생활, 싸요 싸요 뭐든 싸요!” 이치코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백엔샵의 로고송이다. 일단 터져나오는 웃음과 함께 대체 왜 이 노래를 골랐을까 궁금할 새도 주지 않고 이치코는 답한다. “저는 백엔짜리 여자니까요.” 이치코는 자신의 삶을 어설프게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아픔과 상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값싼 동정을 바라며 과장하지 않는다. 마치 정직하게 뻗는 스트레이트 펀치 같다.

비록 남들이 보기에는 보잘 것 없는 “백엔짜리”의 삶이라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 단 한 번도 ‘성공’을 꿈꾸지 않으며 살았고, 딱 한 번 꿈꾸었던 승리조차 이루어내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를 염세적인 냉소나 작위적인 비장감 없이 그려낸 각본과 연출이 마음에 들었다. 그 이야기들을 ‘진짜’의 무게감으로 연기해 낸 강렬한 눈빛의 안도 사쿠라 역시.

#Doors

‘퇴역 군인이자 엄마, 텍사스 사람’으로서 텍사스 31번 선거구의 민주당 하원의원 후보로 지명된 MJ 헤거(Mary “MJ” O. Jennings Hegar)의 선거 홍보 영상.

제대로 바이럴을 탔고, 덕분에 후원금도 많이 모았다고 한다. “지금까지 나온 최고의 선거 홍보 영상”이라는 평도 있었다. 오카시오-코테즈의 선거 홍보 영상과는 분위기가 약간 다르다. 좀 더 ‘영화’ 같다. 실제 그의 삶도 영화 같다.

이 영상의 제목이기도 한 ‘문’(door)은 MJ 헤거가 평생을 살면서 맞닥뜨렸던 숱한 난관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는 “나의 삶이란 내 앞에 놓인 모든 문들을 열고, 밀고, 때로는 발로 차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라고 말한다.

위키피디아에 적혀있는 그의 군 관련 경력은 정말 대단하다.

그는 ROTC 출신으로 공군에서 항공기 정비 장교로 일했고, Air National Guard의 파일럿 훈련을 받았다. 육군에 파견되어 아프가니스탄에서 부상자 헬기 수송 임무(Medavac)를 수행했다.

임무 수행 중 탈레반의 공격으로 헬기 파손은 물론, 그 자신도 부상을 입었지만, 그 와중에도 부상자를 구해냈다고 한다. 결국 헬기가 추락하여 다함께 구조를 받는 상황이 되었는데, 새로 온 구조 헬기가 정원 초과라서 헬기의 스키드 부분을 잡고 탔다고 한다.

이때의 부상으로 인해 그는 전투 병과에서 제외되었는데, 이후 여군의 전투병과 제외 정책(Combat Excursion Policy)이 위헌이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2013년 미 국방부에 의해 이 정책은 철회되었다. (See also COMBAT EXCLUSION POLICY FOR WOMEN)

(나는 이 대목에서 육군의 강제 전역 조치에 맞서 소송을 제기하여 끝내 복직했던 불굴의 헬기 조종사 ‘피닉스’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을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참고로 MJ 헤거의 콜 사인은 ‘Pedro 15’.)

오는 11월, MJ 헤거는 2003년부터 현재까지 이 선거구의 하원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존 카터 의원(공화당)과 맞붙는다. 영상 속 존 카터 의원의 지역 사무실 ‘문’은 굳게 닫혀 있다. MJ 헤거 앞에 또 하나의 ‘문’이 놓였다.

The #Courage to #Change

올해 6월, 미국 뉴욕주 14선거구(퀸스, 브롱크스) 민주당 경선에서 10선의 현역 하원의원 조 크롤리(Joe Crowley)를 꺾고 당의 후보가 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테즈(Alexandria Ocasio-Cortez)의 홍보 영상이다.

아침. 출근하듯 집을 나서는 모습. 자신의 출신과 배경을 알리는 사진 2장. 지하철을 기다리고, 지역 유권자들을 만나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 뉴욕 빈민 지역에서 마천루와 부촌을 바라보는 시선. 이 영상이 말하는 바는 명확하다: I am you.

오카시오-코테즈는 만 28세, 노동계급 출신(“working class newyorker”) 푸에르토리코계 여성으로서 정치 경력이라고는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의 선거 캠프에서 일한 것이 전부인 ‘정치 신인’이다. 소액 후원 위주로 30만 달러를 모금한 그가 그 10배에 가까운 340만 달러를 모은 조 크롤리를 이겨버렸다.

해당 선거구의 노동계급, 이민자, 유색인종 유권자들이 늘고 있었기에 붙어볼 만 하다고는 생각했겠지만, 15% 이상의 차이로 크게 이길 줄은 몰랐을 것이다. 어떤 이는 2004년 오바마가 등장하던 때가 떠오른다고 말한다. 가슴을 뛰게 만드는 묵직한 등장이라는 점은 확실히 닮았다.

대만 청춘 로맨스물. 저우제룬, 구이룬메이 주연 ⟨말할 수 없는 비밀⟩(Secret, 2007)에 비해 몇 배나 더 좋았다는 지인의 평을 듣고 보았지만, 보는 내내 고개를 갸우뚱 했다. 이 영화가 몇 배나 더 소란스럽고 몇 배나 더 유치하기는 하다.

이런 류의 영화가 으레 그렇듯, 첫사랑의 대상인 여자 주인공은 이쁘면 이쁠수록 그리고 남자 주인공은 형편 없으면 형편 없을수록 관객의 몰입을 돕는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역을 맡은 천옌시는 그 조건에 정확히 부합한다. 이 영화를 통해 대만 국민 첫사랑에 등극했다고 한다.

극중 저질 고등학생들의 치기 어린 장난 정돌 치부되는 행동들은 요즘 세상에서는 사회면 뉴스감이다. 성인과 비슷한 발육상태인 소년이 집에서 나체로 생활하는 모습이나 대학 남자 기숙사 묘사 등 지저분한 장면이 한 두개가 아닌데, 이걸 참고 끝까지 볼 만큼 진한 감동이 있었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아주 다행인 것은 — 스포일러일 수도 있지만 — 영화 내내 아무도 죽지 않는다. 대입시험을 보던 여자 주인공이 배를 움켜쥐기에 설마, 싶었지만 정말 다행스럽게 ‘불치병 스토리’로 전개되지는 않았다. 그냥 시험 당일, 긴장이 심하여 복통을 느낀 정도였던 것 같다.

역시 이런 류의 영화가 으레 그렇듯, 정작 서로를 애타게 좋아하는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사랑은 쉽사리 이루어지는 법이 없다. 남자 주인공은 이런 독백을 한다: “성장하는 동안 가장 잔인한 것은 여학생은 남학생 보다 성숙하며, 그 성숙함을 견뎌낼 남학생은 없다.”

이 영화에서는 유독 여자 주인공이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남자 주인공은 터무니 없는 짓거리들만 일삼으며, 여자 주인공에게 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인정해주지 않느냐는 해괴한 소리만 늘어놓는다. 남학생이 여학생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미숙하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정말로 성숙한 사람이라면 상대방의 미숙함을 알아보고 그를 다그치기 보다는, 그래, 그 시기에는 그런 유치한 짓거리들을 하고는 하지, 하며 인정해줄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다시 말하면, 이 시기의 ‘여학생’ 역시 아직 충분히 성숙한 것은 아니고, 단지 유치한 짓거리가 인생에서 그다지 유익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 정도에 불과하여, 상대방의 미숙함이 그 시기를 거쳐가는 통과 의례와 같은 것임을 넉넉히 이해할 정도는 되지 못한다.

오죽 어리면 남자 주인공의 고백을 기다리고 기다릴 뿐 적극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으며, 남자 주인공에게 사랑이 이루어질락말락 할 때가 가장 아름답다느니, 고백을 받아주고 나면 사랑이 시들 것 같았다느니, 하는 철부지 연애론을 늘어놓을 정도이다.

그래도 이 영화의 미덕이 있다면, 특별히 꼬인 점 없이 비밀스럽거나 판타지스러운 요소가 없이 어쩌면 동세대들이 가장 공감할 만한 학창시절과 있었을 법한 첫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 덕에 대만과 아시아 등지에서 호평을 받으며 꽤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코코?

영화 ‹코코›의 ‘코코’는 영화 포스터 속 기타를 둘러맨 주인공 남자아이의 이름이 아니었다. 그의 이름은 ‘미겔’이었다! 그럼, ‘코코’는? ‘미겔’의 증조할머니, 즉 ‘미겔’의 아버지(‘엔리케’)의 어머니(‘엘레나’)의 어머니를 부르는 이름이다.

주인공 ‘미겔’은 ‘망자의 날’(el Día de los Muertos)라는 멕시코 전통 명절에 어떠한 계기로 저승으로 넘어가 자신의 증조할머니(‘코코’)의 어머니, 즉 고조할머니(‘이멜다’)를 만나고 고조할머니의 형제들(‘오스카’, ‘펠리페’)를 만나고 증조할아버지(‘훌리오’)와 증조할아버지의 누나(‘로지타’)도 만나고 어떠한 이유로 자신의 고조할아버지를 찾아다니게 된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리베라’ 가문(The Riveras)의 이야기이다. (남미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일까. 이 영화를 보면서 마르께스의 «백 년의 고독»을 떠올린 것은 나뿐만이 아니리라.)

이 영화의 타이틀이,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는 ‘미겔’이 아닌 휠체어에 앉아 있는 연로한 그의 증조할머니 ‘코코’가 된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코코’는 이 영화에서 가장 그리운 대상임과 동시에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인물이다.

꿈이 중요해, 가족이 중요해? 둘 다 중요해.

‘미겔’의 고조할아버지는 음악가가 되겠다는 꿈을 좇기 위해 아내 ‘이멜다’와 딸 ‘코코’를 떠난다.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진즉에 알았다. 그러나 여차한 사정으로 다시 가족에게 돌아오지 못하고 비명횡사한다. 가족들도 그의 행방을 알지 못한다. 가족 제단에도 그의 사진만은 빠져있다. 이 때문에 그는 죽어서도 가족을 만나러 오지 못한다. (저승에 사는 영혼들은 누군가 자신을 ‘사진’의 형태로 추모해주지 않는다면, ‘망자의 날’에 금잔화 다리를 타고 이승으로 넘어올 수 없다는 설정이다.)

고조할아버지가 음악을 이유로 가족을 등졌다는 원죄 때문에 ‘미겔’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이 집안에서 음악은 금기시된다. 음악가가 되고 싶은 ‘미겔’의 꿈은 다락으로 숨어들 수밖에 없다. 가족들은 ‘미겔’이 음악가라는 꿈을 포기하고 가업을 잇기 바란다. “미겔. 너도 이제 아빠를 따라 우리 집안의 가업인 신발을 만들자꾸나.” ‘미겔’의 꿈을 반대하는 것은 이승의 가족들뿐만이 아니다. 저승에서 만난 ‘이멜다’ 고조할머니도 마찬가지다. “미겔. 너를 축복한다. 단, 다시는 음악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 저승에서 이승으로 가기 위해서는 저승에 있는 가족들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는 설정이다.)

‘미겔’은 ‘이멜다’ 할머니의 축복을 받기를 거부하고 도망간다. 도망치는 ‘미겔’은 이렇게 외친다. “가족이라면 내가 꿈을 이루지 못하도록 방해만 할 것이 아니라 내 편이 되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미겔’의 이 울부짖음이 ‘이멜다’ 할머니의 마음을 흔든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로 한 ‘미겔’은 자신의 꿈을 포기하여도 좋으니 가족이 우선이라고 답한다. 어쩌면 그것이 ‘미겔’이 저승 여행(?)을 통하여 얻은 교훈일 것이다. 그러나 ‘이멜다’ 할머니는 ‘미겔’을 이승으로 보내면서 이런 축복을 내려준다. “미겔. 너를 축복한다. 아무런 조건 없이…”

너를 축복한다. 아무런 조건 없이…. 가족의 사랑을 이보다 더 잘 담아내는 말이 또 있을까. 꿈 vs 현실? 고리타분한 이분법이다. 당연히 둘 다 중요해. 꿈을 좇아 가족을 버린다? 가족을 위해 꿈을 희생한다? 둘 다 틀렸다. 미겔. 양자택일의 함정에 빠지지마. 너는 꿈을 좇으면서 가족과도 함께 할 수 있을 거야. 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이토록 따스한 저승, 이토록 귀여운 해골들이라니­….

<코코>에서 그려지는 저승은 매우 따뜻한 느낌이다. 전통 명절인 ‘망자의 날’ 기간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멕시코 사람들은 이 기간에 해골 분장을 하고 흥겹게 지낸다고 하는데 죽은 사람을 기리는 의식이 음울하지 않고 매우 밝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프리다 칼로가 등장한다. 일생을 고통스럽게 살다간 예술가가 저승에서는 그를 기억하는 이승의 수많은 사람들덕분에 행복하게 지낸다. 여전히 작품 활동을 하면서. 많은 유명인들 중에 유독 프리다 칼로를 등장시킨 이유가 궁금했다. 스토리 전개상 꼭 필요하지도 않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반면, 한 이름 없는 악사는 이승에서 그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어 결국 사라지고 만다. 저승에서는 이를 ‘두번째 죽음’이라고 부른단다. 그들은 어디로 가게 되냐고? 영영 사라지는 것일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저승이 쓸쓸하게 그려지는 유일한 장면이었다.

오래도록 기억될 노래, <Remember me>

저승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미겔’이 자신의 증조할머니 ‘코코’에게 “할머니의 아버지가 들려주랬어요.” 하며 시작하는 노래, <Remember me>. 마치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모두 이 한 장면을 위하여 준비된 것처럼 감정이 터져나온다. 처음으로 가족들 앞에서 기타를 잡고 노래를 하는 ‘미겔’, 목석처럼 우두커니 앉아 그의 노래를 듣고 있던 ‘코코’ 할머니, 그리고 그 광경을 보고 있는 가족들의 얼굴들…. 아, 이 장면과 이 노래는 아마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좋은’ 이야기의 여운

영화든 드라마든 소설이든 좋은 이야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다른 이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게 만들고, 또 다른 새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코코>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아내에게 <코코>가 어떤 영화인지 열심히 설명했고, 나의 설명을 들은 아내는 몇몇 설정에 놀라워하며, <코코>가 참 좋은 이야기라고 평했다. 그리고 우리도 이런 이야기를 써보자고 했다. 이왕이면 지금 자라나고 있는 우리의 아이(총총이)가 볼 수 있도록 그림책 형태로 만들자고, 까지.

<코코>의 따뜻함이 묻어나는 그런 이야기를 써보고 싶어졌다.

참혹한 범죄로 딸을 잃은 한 여성이 미주리주 에빙 외곽 도로 근처 대형 옥외 광고판(빌보드) 세 개의 사용권을 산다. 딸의 사체가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는 이렇게 적는다.

‹죽어가는 동안 강간을 당했어.›

‹그런데 아직 아무도 체포되지 않았다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왈라비 서장?›


그러니까 이 광고문은 딸이 비참한 죽임을 당하고 벌써 몇 달이 흘렀음에도 아직 사건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한 무능한 경찰에 대한 일종의 저격글인 셈이다.

새 도로가 뚫리고 나서 오가는 차가 거의 없는 한적한 외곽도로, 사실상 방치된 광고판에 불과했지만, 소도시 에빙에 가해진 파장은 작지 않았다. 왈라비가 서장으로 있는 에빙 경찰서가 발칵 뒤집힌다.

경찰들은 강하게 반발한다. 사체에서 검출된 DNA와 일치하는 용의자를 찾지 못했다. 그런데 뭘 더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결정적으로, “우리 서장님, 췌장암 말기 환자인데, 이렇게까지 해야 했어?”

이 시놉시스가 어떻게 ‘코미디’ 장르라는 것일까. 이건 누가 봐도 스릴러, 범죄물 영화가 아닌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관객들은 이 영화를 통해 코미디 장르에 대한 편견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다. 해학은 없지만, 풍자와 조롱은 가득하다. 무엇에 대하여? 무식하고 무능한 특정 계층에 대하여.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프란시스 맥도맨드가 분한 ‘밀드레드 헤이즈’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그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속으로 삭이기 보다는 직접 행동으로 응수한다. 그는 이를테면 ‘응보주의자’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불에는 불. 때론 엉뚱한 앙갚음이 되기도 하지만 어쨌든 당하고 있지만 않는다. 항상 턱을 당긴 채로 어떤 위협에도 냉정함을 잃지 않고 당당하고 과감하게 대처(하려고 노력)한다. 어떤 권위에도 굴복하지 않고 꼿꼿하게 맞선다.

그렇게 맞서 싸우는 과정이 항상 옳고 좋고 아름다운가. 그는 결국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내는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가. 이 모든 질문에 ‘그렇다’라고는 답하기는 어려울지 모르겠으나, 분명히 균열을 내기는 한다. 그리고 왈라비 서장의 말처럼 “그건 아주 멋지고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그러면 이 영화는 세상의 모든 피해자들에게, 당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잘 봤지? 이렇게 싸우는 거야.”하고 ‘싸움의 전략’을 알려주려는 것일까. 그건 또 아닌 것 같은 게, 두 시간 남짓 이 짧은 시간 속에서도 ‘밀드레드 헤이즈’는 변화한다. 

변화한 그가 맞이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첫 장면에서는 미처 상상도 못했던 그림이다. 그런데 또 그 그림이 꽤 설득력이 있다. 그들이 겪었던 과정을 따라가면 그럴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이 영화가 매력적으로 다가온 가장 큰 이유였다. 끝맛이 좋다.

그래서, 그는 딸을 죽인 범인을 잡았을까? 영화를 보고 직접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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