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럴 드웩이 쓴 『마인드셋』. 이 책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노력에 의해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다는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을 가진 사람이 타고난 지능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믿는 ‘고정 마인드셋’(fixed mindset)을 가진 사람보다 더욱 성장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귀가 솔깃하는 이야기이지만, 사실 위험한 이분법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을 고정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과 성장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 이렇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까. 이 두 부류를 수시로 왔다갔다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분야에 따라 마인드셋이 달라지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양 극단에 위치한 사람들도 있긴 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두 마인드셋을 섞어서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 하는 증거들은 성장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들이 학습과 성취에 좀 더 우호적이라는 실험 결과들이다. 어디까지나 간접적이다. 성공한 모든 사람들이 ‘성장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이라고 단언할 수 없고, ‘성장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였다는 논거가 있지도 아니하다. 세상에 이름을 떨친 유명인들 역시 타고난 재능보다는 후천적인 노력의 영향이 컸다는 이야기를 할 뿐이다.

‘마인드셋’을 바꾸면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뀔 수 있다는 설명은 자칫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줘서 결국 이루어진다.”와 같은 해괴한 신비론적 주장으로 오인될 소지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런 형편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은 아니다. 혹시라도 그런 오해를 사지 않도록 저자는 ‘실행’의 중요성을 분명히 강조한다. 마인드셋만 갖고 있다고 모든 것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고정 마인드셋’이 학습자의 학습 의욕을 꺾어버린다는 것은 우리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그 ‘고정 마인드셋’은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머리가 복잡하다. 타고난 것일까. 아니면, 부모 또는 교사로부터 주입된 것일까. 그래서 부모 또는 교사의 역할과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대한 설명이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설령 전자라고 해도 그 마인드셋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이기도 하다.

“모든 애견인들의 염원(念願)을 담은 판타지” — 어느 평론가의 평이다. 잠깐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이 영화를 설명하는데 이보다 나은 표현을 찾기는 어려웠다.


모든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세상에 던져진 한 마리의 개가 있다. 이 개는 태어나자마자 죽게 되는데, 곧장 다른 개로 환생한다. 이 과정을 겪어도 ‘정체성’은 또렷이 유지된다는 설정이다. 왜? 어떻게? 그냥 ‘설정’이다. (그래서 ‘판타지’라는 얘기다.)


한 번은 레트리버로 태어났다. 차 안에 갇혀 탈수로 죽을 뻔했다. 이를 우연히 발견한 “이든”이라는 소년 덕분에 살아난다. 그리고 길러진다. 그로부터 “베일리”라는 이름을 얻고, “이든”의 곁에서 그의 모든 성장 과정을 함께 한다.


개의 수명은 인간의 그것에 비하면 짧다. “베일리”는 “이든”의 냄새를 맡으며 짧은 생을 마감한다. 보통의 동물을 주제로 한 영화는 이렇게 끝이 난다. 대표적인 예로 ⟨말리와 나⟩ (Marley & Me, 2008).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개가 환생(!)을 한다.


“베일리”는 셰퍼드로 다시 태어나 “엘리”라는 이름을 받는다. 외로움을 품은 경찰 “카를로스”와 함께 살며 그를 위로하고 그와 함께 범죄를 해결한다. 그다음에는 웰시 코기로 태어나 “티노”라는 이름을 받는다. 역시 외로운 대학생 “마야”의 곁에서 살면서 그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모습까지 지켜본다.


‘개’의 눈으로 보기에 ‘인간’의 삶은 가끔 이해하기가 어렵다. 인간이 쓴 대사이지만, 이 말은 특히 가슴에 남았다: “인간들은 복잡하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예를 들면, 이별 같은 것.” (Humans are complicated. They do things dogs can't understand. Like leave.)


환생을 거듭하던 “베일리”는 결국 삶의 목적을 찾게 된다. 그 중 하나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Just be here now.)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별’은 말이 되지 않는다. 사랑한다면서 왜 떠나는가. 좋아한다면서 왜 같이 있지 않는가.


영화에서는 장성한 “이든”이 대학에 진학하면서 가족과 “베일리”를 잠시 떠나게 된다. “베일리”는 엄청나게 먼 거리를 가로 질러 “이든”이 타고 있는 차를 따라 잡는데 성공한다. 그렇지만, 이별을 막을 수는 없었다.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명절 연휴를 보내고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 그래서인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떨어져 있으면 궁금하고, 보고 싶은 가족들을 뒤로 하고 나는 왜 서울로 가고 있는 것인가.’


답은 분명하다: 서울에 ‘나’의 가족이 있고, 직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이별’을 통해 홀로 서는 덕이 ‘성장’의 한 방법이고, ‘성숙’의 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도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다.” 그러면 된 것이다.


반려견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며 교감하는 장면들이 많다. 개를 데리고 학교도 가고 수업도 듣고 운동 경기도 보고 동네 축제도 가고 한다. 개와 살아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은 나에게는 꽤 신선한 간접 경험이었다.

기대를 모았던 ⟪SKY 캐슬⟫ 20회는 확실히 충격이었다. 사실 비난이 난무했다. 20회만 작가가 바뀐 것 같다느니, 20회만 교육방송에서 특별제작했다느니. 그 중에서도 SF작가이자 영화평론가인 듀나가 쓴 드라마 ⟪SKY 캐슬⟫ 평론이 화제가 되었다.


'SKY 캐슬' 유현미 작가만 알고 우리는 몰랐던 것들

https://entertain.v.daum.net/v/20190202160636308


제목부터 남다르다. 보통 자신을 포함한 시청자는 잘 아는 것을 작가 당신은 왜 모르느냐, 라는 식으로 공격을 하고 들어가야 하는데, 그 공격 방식을 뒤집었다. 작가 당신만 알고 우리는 몰랐다, 라는 식으로 제목을 쓰고 있다.


[박권일, 다이내믹 도넛] 최고의 결말 보여준 ‘스카이 캐슬’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881283.html


작가이자 사회비평가인 박권일이 쓴 위 칼럼의 제목은 어떤가. 다들 욕을 하는 ⟪SKY 캐슬⟫에 대하여 최고의 결말을 보여줬다고 쓰고 있다. 눈길을 확 잡아끈다. 반어법인가? 그게 아니라면 무슨 이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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