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를 마무리 하는 책으로 손색이 없을 것이라 예상한 것은 맞았는데, 슥슥 잘 읽히는 터라 마지막 책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대학에서 정치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이지만 일간지 칼럼니스트로 더 유명세를 떨치게 된 저자의 에세이를 모아서 펴낸 책입니다.

어떤 글을 쓰더라도 특유의 유머를 잃지 않는 점이 좋아요. 황당할 정도로 탁월한 비유법이 중식당 미원처럼 글의 맛을 살립니다:

“더러움을 찾아 떠나는 무심한 로봇청소기처럼 앞으로 나아갈 때다.”(p.148), “우리는 삼중당 문고 목록에 줄을 그어가며 군사정권이 경제개발 하듯 읽어나갔다.”(p.218), “임플란트를 거부하는 코끼리처럼 결연하게 말했다.”(p.341)

눈에 보이는 것들은 다 찾아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세월호와 박근혜 탄핵 정국에 대한 저자의 에세이/칼럼은 이번 책에서 처음 읽었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어려운 일들에 대하여도 생각하기를 멈추지 말고, 그 생각의 결과물을 글로 옮기는 일에도 게으르지 말자, 고 혼자 다짐을 해봤습니다.

한 편의 글만 꼽으라면, 역시 ‘뱃살이 꾸는 꿈’입니다: 

“아, 뱃살은 평생 긴장해본 적이 없구나, 지배층이로구나, 늘 여유롭구나, 지방층이로구나, 천진난만하구나, 진짜 혁명을 겪지 않았구나, 부드러운 옷 아래 숨어 있었구나, 이데올로기적이구나…”(p.221)

강양구 기자의 리뷰를 읽고, 이국종 교수가 쓴 ⟪골든아워⟫(흐름출판, 2018)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나온 대한민국 최고의 기록 문학 가운데 하나”라는 찬사는 오히려 겸손한 표현 같습니다. 저자의 간결·명료한 문장들은 마치 숙련된 외과의의 정확한 손놀림을 보는 듯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이국종 교수에 대해 가졌던 “삐딱한 시선”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 삐딱한 시선이라는 것은 사실 시샘에 가까운 것이었어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면서, 언론 인터뷰에, 국회 방문에, 방송 출연에, 이제는 책까지 쓰다니….’ 잠시 그런 의심을 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국종 교수는 SNS를 안 하네요.)

‘무슨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아닌 게 아니라 분명한 의도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중증외상환자 치료 시스템을 본인이 경험한 미국, 영국과 같은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것. 그리하여 ‘예방가능사망률’을 줄이겠다는 것. 그 시스템, 그 구조를 만들기 위해, 버티고 또 버티고, 할 수 있는 건 무엇이라도 하고 있는 것이었어요.

자신을 ‘막장 노동자’에 비유해요. 어두침침한 복도를 지나 수술방으로 들어설 때 거기를 ‘막장’이라 여긴다고 하네요. 자조적인 표현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길의 끝이지만 탄의 생산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니까요. “막장은 단순한 끝이 아니라 끝이자 시작인 곳이다.” 어떻게든 출구를 열어가며 돌파해내는 자세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드러난 표현입니다. 제가 보기엔 저자 역시 그런 사람입니다.

처음부터, ‘나 이국종은 무슨 일이 있어도 버틴다.’, ‘대의를 위하여 끝까지 간다.’와 같은 초인적 결의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외려, “밥벌이의 종결은 늘 타인에 의한 것이어야 하고”, 남이 관두라고 하기 전까지는 “의사로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정도의 마음가짐 입니다. 물론 그것도 쉽지 않죠. 대단한 거죠. 그래도 인간적인 냄새가 나요. 프로야구, 캐치볼 이야기를 할 때는 특히 더.

책을 읽고 있으면, 시샘은 쑥 들어가고 존경심이 불쑥 솟아납니다. 살아있는 동시대인에게 이런 마음을 품게 되다니, 이래도 되는 것일까 싶네요. 이국종 교수와 그의 팀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응원하게 됩니다. 리디셀렉트 덕에 무료로 읽고 있는데, 따로 사서 소장해야겠다 싶습니다. 전자책으로 읽는 이유는 집에 책을 줄이고 싶어서였는데, 이렇게 또 책을 사게 되네요.

* 이 글은 이 책에 대한 요약이 아닙니다. 그저 최근 저의 고민점인 ‘개인의 성장과 조직의 성장 그리고 그 둘의 선순환 구조 만들기’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책을 만난 반가움에 독서 직후의 감상을 가볍게 적어본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이 책을 접하는 분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 함께 자라기 — 애자일로 가는 길

‘애자일’(agile)은 좁게는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의 일종을 의미함. 저자는 ‘애자일’을 ‘일의 스타일’, ‘삶을 사는 방식’으로 넓혀서 적용함. 애자일의 핵심 구동원리는 바로 학습(자라기)과 협력(함께)임.

# why - 불확실성

우리의 일에, 삶에 ‘애자일’ 방식이 필요한 이유는 ‘불확실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기 때문임. 애자일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전제로 함. 다시 말해, 무언가 확실한 상황에서 굳이 애자일 방식을 고집할 필요는 없음.

애자일이 불확실성을 다루는 방식은 “좀 더 짧은 주기로 더 일찍부터 피드백을 받고, 더 다양한 사람으로부터 더 자주 그리고 더 일찍 피드백을 받는 것”이라 정리할 수 있음.

애자일의 핵심 구동원리인 학습과 협력은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효과적인 대응전략임. 그렇다면, 어떻게 학습하고,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 이 물음이 이 책의 화두임.

# what & how - 학습

저자는 먼저, 일반 대중이 갖고 있는 ‘전문가’에 대한 환상을 깨는 것에서부터 시작함. 첩첩산중 깊숙한 동굴에 속세와 절연하고 무공을 연마하는 무림 고수와 그를 찾아온 제자가 수련을 하는 모습은 ‘전문가’에 대한 대표적인 환상임.

최근 연구에 의하면, 전문가는 외부와 담을 쌓고 혼자 연마하는 사람이 아님. 오히려 ‘사회적 스킬’이 높고 ‘사회적 자본’이 풍부한 사람임. 대인관계에 능한 사람임. 그래야 구성원 간 협력이 가능하고, 제품을 통해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할 수 있음.

언어이론에 의하면, 학습은 ‘자신이 기존에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것(i) + 1’ 정도의 긴장이 주어질 때 가장 몰입도가 높다고 함. 그보다 난이도가 높은 경우에는 ‘불안감’에 휩싸이고 그보다 난이도가 낮은 경우에는 ‘지루함’에 휩싸인다고 함. 이 적절한 긴장을 찾으려면 스스로 여러 번 실험을 해보고 실패를 해보고 ‘학습’하는 수밖에 없음. (주변에 적절한 피드백을 줄 좋은 코치가 있다면, 이 학습은 당연히 더 잘 될 것임.)

1만 시간의 법칙은 수련의 양적 측면에 관한 이야기임. 그러나, 질적 측면으로 따지자면 이 1만 시간으로 달인이 되려면 ‘의도적 수련’(deliberate practice)가 필요함. 이 의도적 수련이 바로 위에서 설명한 ‘몰입’ 상태에서 행해지는 학습과 가까움. (우리는 태어나서 1만 시간 이상 칫솔질을 했지만, 여전히 칫솔질 전문가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임.)

학습도 ‘혼자’ 보다는 ‘함께’ 할 때 더 잘 되는 경우가 많음. 학습의 목적이 지식의 축적, 시험에서 고득점 획득이 아니고 실제 우리 사회에서 사용될 수 있는, 그런 가치가 있는 ‘제품’, ‘상품’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임.

# what & how - 협력

프로젝트 역할 배분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재미있음.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역할 배분은 프로젝트가 끝날 때쯤에야 간신히 명확해진다고 함. 그런데 대개는 프로젝트를 제대로 파악하기도 힘든 첫 회의에서 甲은 A를 하고, 乙은 B를 하고, 丙은 C를 하고…, 하는 식으로 나눈다고 함. 그렇게 나눈 다음 각자 열심히 일을 하고 다시 만나면, 엉뚱한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함.

12개의 일을 12명에게 나눌 때, 1명이 1개의 일을 각각 맡는 병렬 방식이 과연 효과적일 것인가. 그리고 그런 조직을 곱하기 시너지를 내는 ‘팀’(team, 서로 얽혀 있는 형태의 조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그건 그냥 더하기 효과를 내는 작업 그룹(work group, 리더를 중심으로 한 중앙집중형 조직)에 가까움.

한 프로그래밍 구루에게 위와 같은 케이스를 물어보았음: “Q. 12개의 일과 12명의 사람이 있다. 너는 어떻게 업무를 나누겠느냐?” 그의 답변은 이랬다고 함: “A. 우선 12개의 일 중 3개의 일을 12명이 협력하여 하도록 한다. 그 과정에서 서로 섞여서 서로에 대해 배우도록 한다.”

‘학습한 것을 공유한다.’ 제대로 ‘공유’하려면 그 밑바탕에 ‘신뢰’가 있어야 함. 다시 말해, 협력의 기본은 ‘신뢰’임. 이 신뢰는 google의 연구에서 다른 말로 표현된 적이 있음. 바로, ‘심리적 안전감’임. 심리적 안전감은 팀원들이 과감히 실험하고 실패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학습할 수 있도록 하는 밑바탕이기도 함.

실수는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라는 패러다임 전환. 실수가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지면 오히려 더 큰 실수가 생기는 역설이 있음. (산불이 나지 않게 하려고 하면 오히려 가소성 물질이 쌓여서 큰 산불이 난다고 함. 그래서 요즘은 작은 산불이 여러 번 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위험을 관리한다고 함.)

실수가 적은 조직이 무조건 좋은 조직이라고 볼 수 없음. 대개 그런 조직은 실수가 없는 것이 아니고 실수가 보고되지 않는 경우가 많음. 실수를 드러낼 수 없는 분위기라는 얘기임. 이런 상황에서 실수가 공유될 리 없음. 개인도 조직도 실패를 통한 학습을 이뤄낼 수 없음.

뛰어난 사람(전문가)가 여럿 모여 있는 팀이 항상 좋은 팀이라고 할 수 없음. 이들을 융화하고 협력하도록 하려면 좋은 코치가 필요함. 오히려 이 코치의 역량이 전문가들을 서로 협력하도록 하고 시너지가 나도록 하는데 매우 결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함.

# 함께 자라기

학습과 협력이 가능한 조직은, 그 조직에 속한 개인은 물론 조직 자체로 성장할 수 있음. 일의 방식을 달리 하면 일을 하면서, 업무를 하면서 개인과 조직이 성장함. 이렇게 성장한 개인과 조직은 사회에 가치를 주는 제품을 전달할 수 있음.

피아노 배우기는 몇 해 전부터 나의 신년 목표였으나, 단 한 번도 시도조차 한 적이 없다. 갈수록 피아노 배우기에 대한 열망은 커져간다. ‘내년엔 꼭.’, ‘이번에야 말로 반드시.’

그런 마음이었으니, 하고 많은 책 중에 ⟪나는 성인이 되어 다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라는 제목의 책까지 펼치게 된 것.

이 책이 제시하는 피아노 수련법이 최근 읽은 ⟪함께 자라기 — 애자일로 가는 길⟫에서 설명하는 ‘의도적 수련’(deliberate practice)과도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어 반가웠다.

가령 “어려운 프레이즈는 원곡대로 치려고 하지 말고 현재 자신의 능력에 맞게 음을 솎아내서 수월하게 칠 수 있도록 변형”해보라는 부분. 이 밖에도 피아노 연주에 필요한 여러 감각을 효율적으로 기를 수 있는 수련법이 소개되어 있다.

“성인이 되어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면 연습량보다 요령을 얼마나 잘 파악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하는 부분 역시. 저자는 연습보다 요령을 강조한다.

노력을 미화하는 격언에 홀리지 말 것. ‘피나는 노력’은 칭찬이 아닌 백해무익한 말이란다. 연습 시간을 내기 어렵다면 악보를 보면서 그 음원을 듣는 것만으도 어느 정도 연습 효과가 나타난다고 한다.

피아노가 몸을 쓰는 악기인 만큼, 마음가짐이 몸에 주는 영향을 생각하여 정신적인 면을 늘 점검하라는 조언. 집중과 좋아하는 음악에 마음을 계속 쏟는 것으로 적당히 힘이 빠져 있는 상태, 반면 집착은 어느 한 가지에 매달려 몸과 마음이 굳어 있는 상태. 기술적 완벽을 추구하기보다는 음악의 즐거움을 느끼며 연주하기.

그래서, 새해에는 정말 피아노를 배울 수 있을까.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없는 이상 실현 여부를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피아노가 마음을 표현하는 우아한 수단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입사 2년차 직장인 ‘장미주’의 고민 — 더 나은 커리어, 삶을 위해 어떤 선택을 내리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 을 중심으로 한 스토리텔링.

“…인생에도 이렇게 장미꽃과 찔레꽃 두 가지 종류의 길이 있다고 생각해. 일찍 빛을 보고 별 어려움 없이 무난하게 살아가는 찔레꽃과 같은 인생이 있는가 하면, 낮은 위치에서 시작해서 오랜 기간 인내의 시간을 거치다 나중에 비로소 화려한 꽃을 피우는 장미꽃과 같은…”

‘장미꽃 인생’과 ‘찔레꽃 인생’이라는 비유와 대조. 이 둘은 특정 진로나 선택이 아닌 삶의 자세와 관점, 실행의 차이라는 것. 그 둘의 우열을 가릴 수는 없지만, 그 차이는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 ‘Integrity’는 일면 ‘안주’로 보이기도 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투자’이기도 하다는 점.

취업을 할지, 공부를 계속할지, 창업을 할지 — 대체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 를 고민하고 있는 대학생 독자가 읽으면 가장 좋을 듯. “꿈을 이루기 위해 달라지든가. 아니면 그 꿈을 버리든가.” 현실 직시를 해야할 시기니까. 이미 비슷한 고민을 겪고 몇 번의 선택을 한 내 입장에서는 같은 과정을 거칠 후배들을 떠올리며 읽었다.

2007년에 출간된 책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하는데(?), 당시 학부 3학년이었던 나는 이런 책의 존재 자체를 몰랐고, 알았더라도 읽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이런 고민을 다룬 책 자체가 지나치게 세속적이고 무가치한 것이라고 받아들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당시의 나는 사는 바닥도, 그 바닥에서의 경험도, 머릿 속 인식의 지평도, 모두 좁았다.

참고로, 이 책은 현재 리디북스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이번 주말 장거리 운전할 일이 있어서 ‘듣기 기능’으로 들었다. (이럴 땐 이 책을 읽었다고 해야하나, 들었다고 해야하나?) 2권도 나와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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