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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다이가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Rogue One: A Star Wars Story, 2016) 스타워즈 전체 시리즈를 놓고 보면 희망의 씨앗이 뿌려지는 시기를 그리고 있지만, 이 영화만 놓고 보면 슬프디 슬픈 한 편의 우주 서사이다. 이후, 내용상 이어지는 스타워즈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무려 행성 하나를 파괴할 수 있는 가공할 위력을 가진 ‘데스 스타’가 어찌 저항군의 전투기 몇 대의 침투로 박살이 날 수 있었던 것인지 그 이유를 설명해주는 영화이다. 전쯔단(甄子丹)이 제다이로 나오는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니었고 봉술 잘 하는 맹인 사이비 포스교 신자로 나온다. 제다이가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 스타워즈라니, 그런데도 재미있다니.
목적 있는 수단은 정당화된다, 미스 슬로운 (Miss Sloane, 2016)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그러면서 자기 앞가림까지 철저하게 하는 로비스트 엘리자베스 슬로운(제시카 차스테인 분)의 이야기이다. 일은 완벽에 가깝게 처리하지만 불면에 시달리고 자주 약을 찾을 만큼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다. 호텔에서 남자 에스코트를 불러서 관계를 갖는 등 사생활도 깨끗하지 않다. 그런데 이런 인간적 결함들 때문에 이 로비스트가 내면적으로 무너진다거나, 갑자기 지난날의 잘못을 반성하고 개관천선한다거나 하는 일은 다행히 없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그 냉혈한 캐릭터로 쭉 밀고 나간다. 그렇게 드라마를 완성한다. 그 점이 정말 좋았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본 것이 다행이었다. 잘 짜인 각본에 세련된 연출. 정말 몰입하면서 재밌게 봤는데, 미국이고 한국이고 흥행참패였다고. 같은..
자유를 거세한 사랑에 대한 잔혹한 우화, 더 랍스터 (The Lobster, 2015) 이 영화 속 각 공간이 의미하는 바에 주목해본다. 공간은 크게 도시, 호텔, 숲으로 나뉜다. 짝을 이룬 자들은 ‘도시’에 산다. 짝을 잃은 자들은 ‘호텔’에 모인다. 그리고 짝 없이 혼자 살겠다는 이들은 ‘숲’으로 간다. ‘도시’는 혼자 있는 자들을 검문한다. 짝과 함께 다니지 않는 자들에게 신분증명을 요구한다. ‘호텔’에서는 정해진 기간 내에 짝을 이룰 것을 강요 받는다. 짝을 이루지 못하면 ‘동물’이 되어서 호텔 밖으로 내쫓긴다. ‘숲’에서는 짝을 이루는 일이 허용되지 않는다. 설령 덫에 발이 걸리더라도 혼자 살아남아야 하고 자기 손으로 판 무덤 ― literally, 무덤 ― 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해야 한다. ‘도시’에는 혼자 있을 자유가 없고, ‘호텔’에는 짝을 이루지 않을 자유가 없으며, ‘숲’..
사운즈 한남 SOUNDS HANNAM 도로 쪽으로 난 회랑을 따라 한 발 들어섰을 뿐인데,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프릳츠 커피 컴퍼니 FRITZ COFFE COMPANY 프릳츠 커피 다녀오고 생각이 많아졌다. 왜 어떤 카페는 ‘이렇게나’ 잘 되고, 어떤 카페는 파리만 날리다 결국에는 망하는가. 입지? 마포구 도화동이 뜨고 있는 동네라고 하기는 어렵고, 공덕역 가까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대로변이 아니고 오히려 같은 블럭 대로변 건물 1층에 떡하니 스타벅스가 입점해 있다. 분위기? 확실히 이색적이다. 기계로 찍어낸 듯 유사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느 프랜차이즈 카페들과는 당연히 다르다. 전에는 고깃집이었던 마당이 있는 2층 양옥집 ― 지면에서 0.5층 높게 1층을 두는 이런 건축양식(?)을 일컫는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 ― 을 통째로 사용한다. 반지하에 빵을 굽는 시설이 있고 1층에 계산대, 커피, 빵 그리고 기념품(컵, 모자, 티셔츠 등..
피팅룸 연남 FITTING ROOM 도시살롱 3회 공유도시를 듣고 굳이 미팅 장소로 정해서 겸사겸사 찾아가봤다. 공간 컨설팅, 디렉팅을 업으로 하는 핏플레이스(FIT place)가 만들고 직접 오퍼레이션까지 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푹푹 찌는 더운 날 골목골목 후비며 찾아가서 그랬는지 한국 아니고 고온다습한 기후의 동남아 어느 나라의 카페에 온 것 같았다. 나무 소재와 식물 배치가 많아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주변을 보면 또 전형적인 한국의 다세대주택 빌라촌이다. 그 전형적인 빌라 건물 1층의 내부 인테리어를 다 뜯어내고 벽면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신축 건물이 이런 인테리어를 했다면 ‘트렌디’한 척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거부감이 있었을텐데, 시간의 흔적이 쌓인 오래된 집이었다보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음료를 팔기는 하지만 단..
관념과 실재의 지독한 추격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 2007) 뻑뻑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건조하다. 사막의 모래바람. 그리고 보안관 역을 맡은 배우의 갈라져 있는 피부가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 보다보니 갈증이 날 지경이다. (어째서 영화 속 인물들은 물 한 잔 제대로 마시지 않는단 말인가.) 이 영화는 크게 두 개의 추격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약거래 현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돈가방을 들고 튄 '르웰린 모스'를 '안톤 쉬거'가 쫓는다. 그리고 보안관 '에드'는 사태의 전모를 파악하기 위해 '안톤 쉬거'와 '르웰린 모스'를 쫓는다. '안톤 쉬거'는 고작 '유머를 좀 알지 못하는' 수준의 악인이 아니다. 도무지 적당한 마무리라는 것을 모르는 인물로서 사람을 죽이고 또 죽이지 않는 것에 관하여 어떠한 필요 또는 불필요를 생각하거나 느끼지 않는 사람이다. 극 중 '안톤 쉬..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음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쇼코의 미소 (최은영) 우리가 무엇이 되어야 한다면 우리는 모두 작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여기서 작가란 그리 거창한 존재는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삶을 말-글로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작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가벼운 마음가짐. 그러나,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작가는 정말로 특별한 존재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들이 단 몇 개의 문장만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솜씨를 보이면 기가 질린다. 나에게 모국어란 친교적 의사소통의 수단에 불과한데, 작가들은 직접 모국어의 지평을 넓히고 그것들을 풍성하게 가꾼다. 최은영 작가의 정갈한 문장들을 읽으며 마음이 가지런해졌다. 단숨에 읽어내리는 것이 아까워 조금씩 아껴가며 읽었다. 어느 평론가가 덧붙인 글과 마지막의 작가의 말까지 빼놓지 않고 읽었다. 작중 인물들에서 ..
투팍의 일대기, 올 아이즈 온 미 (All Eyez On Me, 2017) 투팍(2Pac)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1971년 뉴욕에서 태어나 볼티모어, 캘리포니아를 거쳐 1991년 로 데뷔하고 1996년 를 내놓고 그해 라스베가스에서 총에 맞아 숨질 때까지. 그의 일생을 ‘아주 성실하게’ 담았다. 타고난 문학적 감수성으로 흑인 빈민, 곧 자신의 삶을 노래했고 영화 연기까지 했던 예술가적 면모, 흑표당(黑豹黨, Black Panther Party) 일원이었던 어머니의 영향과 사회적 파장의 중심에서 자신의 노선을 분명히 했던 운동가적 면모, 두 명의 경찰을 총으로 쐈고 성폭력 사건에서 유죄를 받았으며 사망 당일 폭행사건에 가담했던 문제아적 면모까지. 이 모든 것을 한 편의 영화에 다 우겨넣다보니 이미 투팍의 삶을 다룬 바 있는 다큐멘터리 (Tupac: Resurrection, 20..
기쁨도 슬픔도 모두 나의 것, 잘못된 감정은 없다, 아파도 아프다 하지 못하면 (최기홍)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 아이의 감정을 포착하고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 읽어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작업을 ‘감정 코칭’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작업이 말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은 ‘감정 코칭’을 잘 하려면 부모가 먼저 자신의 감정에 대한 감정, 무의식적 반응인 ‘초감정’(meta-emotion)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과정을 통하여 먼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어야 아이에게 감정 코칭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빠로서 저는 제 자신의 감정에 대하여 그다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머리로는 ‘아이에게 감정 코칭을 해주어야겠다’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제 감정 때문에 감정 코칭은 시도도 못하고 실패로 돌아가기..
무반응은 사람의 마음을 갉아먹는다 사회심리학자 해리 T. 라이스(Harry T. Reis)는 「관계학의 성숙을 위한 단계」(Steps Toward the Ripening of Relationship Science)라는 논문에서 그가 생각하는 관계학의 핵심 구성 원리를 한 문장으로 제시했다고 한다. “배우자와의 관계는 파트너가 우리에게 반응하는 것을 감지할 때 더욱 강화된다.” 여기서 말하는 ‘반응’은 크게 세 가지로, 이해 (내 배우자는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내게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있다)인정 (내 배우자는 나라는 사람과 내가 원하는 것을 존중한다)배려 (내 배우자는 내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돕는다)이다. 우리는 배우자가 나와 같은 방식으로 나를 보고, 받아들이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게 도와주기..
허슬, 멈추지 않는 추진력의 비밀 (닐 파텔 등) 서평을 써야해서 억지로 밑줄까지 그어가며 읽긴 했지만 (사실 읽는 재미가 아주 없지도 않았지만) 이제 이런 책은 가급적 피하련다. 살면서 내가 앞으로 몇 권의 책이나 더 읽을 수 있을까. 평생 6,000권 정도의 책을 읽을 수 있다고 하는데, 아무 책이나 집히는 대로 읽으며 살고 싶지는 않다. 처음 이 책에 꽂혔던 이유는, 사람들이 ‘리스크 회피’를 이유로 ‘실패’를 회피하는 바람에 성공에서 더욱 더 멀어지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였기 때문이다. 즉, 무언가를 배우고 더 나아지려면 적당한 ‘리스크’를 감수하고 때론 실패를 맛보기도 해야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리스크를 피하는 것에만 급급해서 ‘성공 = 실패하지 않는 것’으로 정의해버린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므로 “매일 작지만 조금씩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을 감..
기획자의 습관 (최장순) 브랜드 컨셉을 만들고 다듬는 일을 하는 저자가 자신의 업무 요령 같은 것들을 모아서 책으로 펴냈다. 세태가 그러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권의 책’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가볍고 짧다. 중언부언을 피하는 저자의 스타일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고, 읽는이의 입장에서는 쓸데없이 길지 않아서 좋기는 했는데, 책을 집어 들자마자 끝나버린 듯한 아쉬움이 있다. 어떤 사물 또는 주제가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인식되고 있는지를 살피기 위해 구글 이미지 검색이나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검색을 주로 한다는 대목은 참고할만 했다. 물론 그 이미지들을 보면서 키워드를 뽑아내고 연상 작업을 통해 새로운 ‘말’을 찾아내는 것은 온전히 기획자의 능력 또는 노력일 것이다. 저자는 책을 많이 읽지는 않는다고 한다. 직업적으로..
쌍불취하의 경우 재소금지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한 친구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패소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사건에서 패소하였다고 하소연을 하네요.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인지 물어보았습니다. 소액 사건이고, 변호사 대리 없이 본인이 직접 소장을 제출하여 제기한 소송이었습니다.사건번호로 검색하여 소송 경과를 확인하여 보니, 원고가 변론기일에 2회 불출석하고 따로 기일지정신청을 하지 아니하여 원고가 소를 취하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이었습니다(이른바 ‘쌍불취하’).쌍불취하란?민사소송법제268조(양 쪽 당사자가 출석하지 아니한 경우) ① 양 쪽 당사자가 변론기일에 출석하지 아니하거나 출석하였다 하더라도 변론하지 아니한 때에는 재판장은 다시 변론기일을 정하여 양 쪽 당사자에게 통지하여야 한다.② 제1항의 새 변론기일 또는 그 뒤에 열린 변론기일에 ..
채무불이행을 사기로 고소할 수 있을까요? 결로부터 말씀드리면, 돈을 빌려간 사람이 그 돈을 갚지 않고 있다고 하여 항상 사기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사기죄의 성립요건사기죄는 타인을 기망하여 착오에 빠뜨리고 그 처분행위를 유발하여 재물을 교부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얻음으로써 성립하는 것으로서, 기망, 착오, 재산적 처분행위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합니다(대법원 2000. 6. 27. 선고 2000도1155 판결 등 참조) 차용 당시의 변제의사와 변제능력범죄의 성립 여부는 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만약 돈을 빌려간 사람(차용인)이 차용 당시에는 변제할 의사와 능력이 있었다면 그 후에 차용금을 변제하지 못하였고 하더라도 이는 단순한 민사상의 채무불이행에 불과할 뿐 형사상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대법원 2008. 2. 14. ..
인류가 멸망하는 것이 반드시 나쁜가, 김대식의 인간 vs 기계 강한 인공지능이 가능하다면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뇌과학, 뇌인지과학을 공부하고 KAIST 전기, 전자과 교수로 재직 중인 김대식 교수의 인공지능, 딥러닝(Deep Learning) 관련 강연을 활자로 재구성한 책. 이른바 ‘알파고(AlphaGo) 쇼크’ 이후 범람하듯 출간된 인공지능 관련 서적 중 하나인데, 얇기도 얇고 읽기도 쉽다. 기계에게 쉬운 일, 인간에게 쉬운 일과거 전통적인 인공지능 개발에서 겪었던 어려움은 바로 인간에게 쉬운 일(ex. 걸어 다니는 것, 물체 인식하는 것, 목소리를 알아 듣는 것 등)을 기계에게 구현시키기는 매우 힘들다는 점이었다(이른바, 모라벡의 역설Moravec's paradox). 먼저, 지능이 있다는 것은 ‘무언가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정의된다. 그러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