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쇄를 찍자!⟩ 제3화. (참고: 제1화, 제2화)  

초인기작 ⟪츠노히메사마⟫의 담당편집자가 된 ‘쿠로사와’와 그의 옆자리에서 앉아 독특한 캐릭터를 보여주는 편집자 ‘미부 헤이타’(아라카와 요시요시) 둘이서 에피소드를 이끈다. 두 사람의 공통 이슈는 편집자로서 만화가와의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해법을 미리 밝히자면 그것은 독자. 처음도, 끝도 독자. (처음도, 끝도 고객!)

‘쿠로사와’는 담당편집자가 되어 연재분 마지막에 들어갈 카피 문구 고민에 직면한다. 이 카피는 편집자가 작가에게 보내는 일종의 메시지. 이 메세지를 쓰는 것도 편집자의 일. 그는 여기서도 직진한다. 옆자리 선배 편집자인 ‘미부’를 다그치며 그에게서 카피 짜내는 기술을 배우고자 한다. (어이, 어이, 선생님을 잘못 고른 것 아닙니까?)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진다. 자신이 담당하는 ⟪츠노히메사마⟫의 만화가 ‘타카하타 잇슨’이 멘탈 문제로 퀄리티 난조를 보이는 것. 다음주 연재분의 콘티가 주인공 독백이 많고 전개가 지지부진. 한마디로 따분했다. ‘쿠로사와’는 곧장 ‘타카하타’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지만, ‘타카하타’는 역시 신입 편집자라서 뭘 모른다며. 단지 강약 조절일 뿐이라고. 자신은 이렇게 해서 10년을 연재한 것이라며. 윽박지르기에 가까운 변명을 한다.

‘쿠로사와’ 이전까지 ‘타카하타’를 담당하였던 부편집장 ‘이오키베’(오다기리 죠)는 ‘쿠로사와’에게 묻는다. 이 콘티를 받아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고. 답을 주저하는 ‘쿠로사와’에게 명대사 시전.

“우리 편집자가 누구한테 월급 받는 거 같아? (쿠로사와: 회사?) 독자야.
독자의 즐거움을 위해 작품을 가장 높은 퀄리티로 끌어 올린다.
네가 그걸 하지 않으면 무얼 위해 여기 있는 거지?”

결국 ‘쿠로사와’는 이 콘티를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고, 자신의 전화를 받지 않는 만화가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메세지를 전달하기로 결심한다. 바로 ‘카피 문구’를 통해서. (결국 편집장의 승인에 따라 카피 문구가 수정되는데, 이 수정 작업의 각 단계를 세심하게 보여주는 장면도 눈여겨 볼만하다. 각 단계별 그 업무를 하는 ‘사람’이 있다. 수정 요청을 접수한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다시 디자이너에게 가서 수정 요청의 내용을 전달한다. 단순히 전화 한 통으로만 묘사할 수도 있는 단계를 굳이 이렇게 보여줬다. 이런 ‘과정 보여주기’를 통해 주간 만화 잡지 한 권이 만들어지기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수 많은 단계 속에서 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정된 카피 문구가 출력된 견본을 들고 ‘타카하타’의 집에 도착한 ‘쿠로사와’. 콘티 수정을 대차게 요구하지만, ‘타카하타’는 완강히 거부한다. ‘쿠로사와’는 이런 말을 한다.

“지금의 콘티로는 독자들의 가슴을 떨리게 할 수 없어요!
저도 얼마 전까지 독자였으니까요.
작품을 지키는 게 선생님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 콘티를 내놓는다면 독자들은 실망할 겁니다.”

(격렬한 대립 끝에 ‘쿠로사와’는 홀로 눈물을 흘리고 만다. ‘쿠로사와’가 던진 회심의 승부수는 과연 먹혀들 것인가?)

이 사람이 ‘미부’.

이 에피소드의 또 하나의 주인공 ‘미부’가 처한 상황은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작품이 독자 앙케이트에서 꽤 오랜기간 연속 꼴찌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편집장은 좀 더 분발하여야 한다고 말하지만, ‘미부’는 이를 무시한다. 독자에게 아부할 필요 없이, 만화가와 편집자가 2인3각으로 합심하면 위대한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지론을 홀로 간직한 채. (문제는 그 만화가와 2인3각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겠다.) 상황은 매주 더 심각해지고 결국 연재중단. 이대로는 잡지에 실을 수 없다는 판정을 받게 된다. 담당 만화가와의 사이가 뒤틀리게 되는 것도 당연. 만화가는 ‘미부’에게 자신이 계속 만화를 그리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는 말까지 한다.

‘미부’는 신작 아이디어까지 짜내서 프리젠테이션을 해보지만, 만화가는 그냥 꺼지라고 말한다. 낙담한 ‘미부’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 본가에서 짐을 찾아가라는 어머니의 전화였다. 그 짐이란 다름 아닌 어느 것 하나 잘하는 것이 없던 어린 시절 ‘미부’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던 주간 만화 잡지 모음. 그 잡지들을 하나씩 펼쳐보던 ‘미부’는 잡지 중간에 붙어 있는 독자엽서에 눈이 머무른다. 우표값이 아까워 부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의견이 독자엽서에 정성스럽게 쓰여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던 독자 앙케이트는 어쩌면 독자의 진심이 담긴 메시지라는 것. (이 대목에서 나도 향수에 젖었다. 주간 만화 잡지, 월간 게임 잡지를 많이 샀지만 한 번도 독자엽서를 보낸 적이 없었다. 그래도 독자엽서의 빈 칸은 열심히 채웠다.)

결국 ‘미부’는 그간 무시했던 독자 앙케이트 결과를 다시 들여다본다. 그리고 자신이 담당했던 만화에 대한 독자 의견을 꼼꼼히 정리하여 만화가에게 발표한다. 왜 우리 만화는 인기가 없었는가. 매우 냉정한 분석이었다. 발표 이후 만화가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이 안타까운 결과는 모두 편집자 자신의 탓이라고. 자신은 정말로 재미있다고 생각했고, 이 만화를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편집자인 자신은 만화가의 작품이 어떻게 독자에게 전달될 것인가를 가장 먼저 생각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고. (‘미부’의 진심이 담긴 발표는 만화가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것인가?)

“만화가에게는 독자라는 튜브가 필요하다.
그 튜브를 건네주는 게 나의 일이다.
두 번 다시 빠뜨리지 않을 것이다.
만화가를 위해서도. 그의 작품을 기다리는 독자를 위해서도.”

재능 있는 만화가를 발탁, 연재를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는 의미에서 편집자가 갑의 위치에 있을 것 같지만, 연재를 시작한 이상, 만화가로부터 매주 제때 작품과 콘티를 받지 못한다면 책이 나올 수 없게 되고, 게다가 어떤 작품이 10년 가까이 연재되어 어엿한 간판작의 지위에 올라서게 되면, 오히려 만화가가 갑 또는 슈퍼갑의 위치에 서게 되는 게 아닐까. 이 드라마에서도 편집자들은 만화가를 진심을 다해 예우한다. 매주 끝이 없는 마라톤을 이어가는 만화가에 대한 존경을 담아. 그렇지만, 그런 정도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번 에피소드의 교훈이랄까. 

편집자는 작가의 초고를 가장 먼저 받아보는 제1독자로서의 역할을 다해야한다. 제1독자는 독자가 아니다. 독자와 작가의 사이에 있는 사람이다. 즉, 다리이다. 작가는 편집자라는 다리를 통해 독자와 연결된다. 자신의 작품을 좀 더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많은 작가들이 책의 서문에 편집자에 대한 감사 인사를 넣는 것도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제1독자로서 함께 내용을 발전시켰고, 어떻게 하면 독자에게 더 잘 전달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제1독자로서 작가와 독자를 잇는 다리가 되는 것, 가장 중요한 ‘편집자의 일’이다.

오에 겐자부로의 ⟪읽는 인간⟫을 읽다 앞으로의 독서에 참고할 만한 방법이 소개되어 있어 옮겨보았습니다(p.38~42). 오에 겐자부로는 “재독(再讀, rereading), 즉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은 전신운동이 된다”, 라고 하네요. (전신운동?)

오에 겐자부로 (大江 健三郎)

  • 책 한 권을 처음 읽을 때, 우리는 언어의 라비린스(labyrinth), 즉 미로를 헤매듯 독서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하지만 한 번 더 읽을 때는 방향성을 지닌 탐구(quest)가 됩니다. 무언가를 찾아 나서서 그것을 손에 넣고자 하는 행위로 전환되지요. 그것이 rereading, 한 번 더 읽는 까닭입니다.
  • 저는 이렇게 합니다. 한 권의 번역본을 읽습니다. 그리고 그 책에서 정말로 좋다고 생각하는 부분, 혹은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에 각각 빨강과 파랑, 두 종류의 색연필로 선을 긋거나, 약간 긴 구절이라면 선으로 상자를 만드는 것이 제 방법입니다. 선을 그을 연필의 색이 적어도 두 종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한 색은 감탄한 부분, 매우 흥미로운 부분에 선을 긋는 긍정적인 행위를 위함입니다. 아울러 외우고 싶은 단어나 문장이 있다면, 특별히 선을 굵게 그어두는 게 좋습니다.
  • 또 하나는, 이 부분은 잘 모르겠다 싶은, 다소 부정적으로 신경이 쓰이는 부분입니다. (…) 그러니 어느 부분이 잘 이해가 안 된다 싶으면 그걸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해보는 게 좋습니다. 그걸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말하자면 진정으로 책을 읽느냐 읽지 않느냐를 가늠하는 중대한 차이가 됩니다.
  • 진정 훌륭한 언어, 훌륭한 표현이다 싶어 기억해두고자 하는 부분은 붉은색으로 칸을 쳐둡니다. 그렇게 책을 다 읽고, 영어 책이라면 '아마존' 같은 데서 금세 구할 수 있을 테니 원서를 사서 우선 감동한 부분을 원문과 대조합니다. 작가가 이걸 쓰면서 이런 생각을 했구나 하는 것을 쉬이 알 수 있어요.
  • 일 년에 한 권이라도 좋아요. 이런 방법으로 그리 많은 책을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또 번역된 문장을 외우려 들면 좀처럼 외워지지 않는데(예외도 있습니다만), 원문을 옮겨 적으며 외우면 글쓴이 마음의 변화나 리듬이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에 외국어라도 외우기 쉬울 때가 많습니다.
  • 다음은 파란색으로 칠해 둔, 아무래도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 부분


  • 현대 대도시의 핵심적인 역설은 장거리 연결 비용은 떨어졌지만 인접성의 가치는 더욱 커졌다는 사실. 도시는 인접성, 혼잡성, 친밀성을 특징으로 한다. 도시는 기업에게 인건비, 토지비를 상쇄하는 생산성의 이점을 만들어준다.
  • 어느 나라든지 도시화와 번영 사이에는 완벽할 정도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1인당 생산성, 주관적인 생활의 만족도 측면에서 그러하다. 도시의 인접성은 아이디어의 전파, 지식의 전파에 있어 중심적 역할을 해왔다.
  • 도시는 소규모 기업들과 숙련된 시민들이 많을 때 번성한다. 산업의 다양성, 기업가 정신 그리고 교육은 혁신을 만들지만, 헨리 포드의 대형 아이디어로 화려한 성공을 거둔 디트로이트 모델은 도시의 쇠퇴로 이어졌다.
  • 쇠퇴하는 도시의 대표적 특징은 경제 규모에 비해 주택과 인프라가 과도하게 많다는 점. 공공 정책은 가난한 ‘장소’가 아닌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 건물 중심으로 도시를 개편하려는 행동은 어리석다. 도시는 구조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 도시는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들지 않는다. 즉 도시는 가난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가난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더 나은 무엇을 찾기 위해 도시로 몰려온다. 이건 축하받아야 할 사실이다. 도시의 빈곤은 도시의 부가 아니라 시골의 부와 비교받아야. 
  • 도시의 토지 이용 규제는 높은 가격, 과도하게 비좁은 아파트, 혼잡함, 스프롤 현상(sprawl: 도시의 급격한 발전과 땅값 상승으로 인해서 도시 주변이 무질서하게 확대되는 현상), 슬럼가, 부패 등으로 이어진다.
  • 나무와 풀에 둘러싸여 살면서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도시에서 살면서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전통적인 도시에서는 운전을 많이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탄소배출량이 더 적다. 도시는 탄소배출을 줄인다.
  • 아이디어들은 혼잡한 도시 공간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로 전파되며, 이런 교환은 이따금 인간의 창조성에 힘입는 기적들을 창조한다.
  •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기술 정보 허브인 ‘#실리콘밸리’가 있는 산타클라라 카운티는 미국의 철도왕이자 상원의원을 지낸 르랜드 스탠포드가 자기 소유의 말 농장에 대학을 설립하기로 결정하기 전까지는 과수원과 농장으로 뒤덮여 있었다.


도시의 승리 - 6점
에드워드 글레이저 지음, 이진원 옮김/해냄


  • 스타트업의 경쟁력은 돈을 적게 쓰는 데에서 나온다. 자본이 없다는 것은 스타트업이 가진 가장 큰 축복이다. 한정된 자원은 창업가를 천재로 만든다.
  • 세상은 점점 더 빨리 변하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리스크다. 투명한 정보와 의사결정, 빠른 실행력이 큰 경쟁력이다. 다가오는 리스크에 더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스타트업이 오히려 덜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 견딜 수 있는 만큼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며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대한의 실험을 해서 제품시장적합성(product-market fit)을 찾아가는 것, 그리고 이 결과를 통해 투자자를 설득하거나 매출로 연결하는 전략을 세우는 것.
  • 창업가는 매 순간의 경험들을 배움의 기회로 삼아 머릿속에서 정리하면서 끊임없이 주의 깊은 연습을 한 사람들이다. 이런 연습 기회가 많았거나 경험이 독특했던 사람일수록 성공할 확률이 높다.
  • 당신의 아이디어가 좋지 않은 이유는, 첫째 공감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고, 둘째 아직 때가 아니기 때문이며, 셋째 아직 실행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 회사의 비전, 제품의 목적과 같이 미래를 고민할 때는 10년 후 신문의 1면에 어떻게 기사가 나오면 좋을지 실제 기사를 작성해보는 방법이 좋다. 당신은 어떤 헤드라인을 보고 싶은가?
  • 거래해야 하는 상대방의 수에 따라 수익모델의 난이도는 거듭제곱의 법칙으로 올라간다. 처음에는 간단한 수익모델로 만들어라. 그리고 거래해야 하는 상대방을 하나씩 이해해가면서 조금 더 복잡한 수익모델을 테스트하라. 
  • 스타트업이 가진 가장 효과적인 무기는 스피드다. 남들보다 더 빨리 할 수 있으니까 스타트업이다. 창업가가 해야 할 일은 최소기능제품(MVP)를 만들어서 핵심경쟁력을 검증하는 일이다.
  • 자율성융통성은 스타트업의 특성이다. 환경의 변화에 가장 빨리 대응하고, 필요한 경우에 회사의 목적과 조직체계를 쉽게 바꿀 수 있다. (원칙이 필요하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이 아니라 팀원들 사이에 지켜야 할 대전제 같은 것이어야 한다.
  • 창업가가 할 일은 회사의 성장이 임계점에 다다랐는지 아닌지를 끊임없이 모니터링하고 다음 단계로 성장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임계점에 이르렀을 때, 창업가는 재빨리 회사의 자원을 재배분하고 위임해야 한다.)
  • 창업을 하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일 한 가지를 이루기 위해 10가지 싫어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것마저 좋아하게 되는 것이 창업가의 삶이다.
  • 창업가가 결코 위임하지 말아야 할 일들은, 첫째 채용과 해고 성과보상에 관한 일, 둘째 비전(=구성원들이 날마다 행동하는 기준)과 목표 수립, 셋째 기업문화(=회사가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한 공통의 기억)이다.
  • 창업가는 정신이 맑고 명확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여유를 가지고 20% 정도는 다른 생각을 하거나 쉬거나 다른 일을 해야 한다.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반복적인 일은 위임하거나 자동화하고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한다.
  • 창업가는 제품이 아니라 비전에 집중해야 한다. 아이디어는 틀리기 마련이고, 제품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비전이 분명하면 제품의 실패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된다. 실패로부터 배우고 다음 피보팅을 준비할 수 있다. 
  • 성공하는 사업계획서는 첫째, 간단하고 명확하다. 둘째, 시장자료가 아닌 창업가의 통찰력을 담고 있다. 셋째, 앞으로 하겠다는 것 말고 지금까지 한 일을 담고 있다. 검증된 프로세스를 더 스케일러블하게 실행하려고 적는 것이 사업계획서다.
  • CEO로서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시장상황과 팀원들의 의견을 잘 모아 제대로 사업계획서에 담고 모두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한 분기에 딱 한 가지 목표를 팀원들의 머릿속에 넣어두면 그 분기는 매우 순조로웠다.

창업가의 일 - 8점
임정민 지음/(주)북스톤


⟨중쇄를 찍자!⟩ 제1화가 기대 이상으로 재밌어서 연달아 제2화, 제3화를 보았다. (휴일은 좋은 겁니다, 여러분.)


먼저, 제2화.

제1화에서 아주 잠깐 등장했던 만화 영업부에서 ⟪바이브스⟫를 담당하고 있는 사원 “유령” ‘코이즈미 준’(서강준사카구치 켄타로)가 에피소드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만화를 즐기는 인구가 점차 감소하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 만화 영업이라는 일이 무슨 가치를 지닐까’라는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그 생각이 곧 행동으로 이어져 영업 접점인 서점 직원과의 커뮤니케이션 역시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한다. 그래서 “유령”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코이즈미’는 몇 년째 부서 이동 신청서를 내고 있다. 그런데 영업부장이 “정보지 편집부로 가서 무슨 기획을 어떤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인가?”하고 단도직입 물어도 딱히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것을 보면 정보지 편집 업무에 또 대단한 소명의식이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닌 듯 하다. 단지, 만화 영업은 본인과 맞지 않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일 뿐.

이때 영업부장 ‘오카 에이지’(나마세 카츠히사)가 명대사를 시전한다. “본인의 위치를 모르는 녀석은 어디에도 갈 수 없다.” 이 대사를 듣고 머리를 얻어 맞은 듯 했다.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는 누구인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나는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지,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는가. 그걸 출발점으로 삼지 않고서 갈 수 있는 곳이란 대체 어디일까. 그 어딘가에서는 나는 또 누구일 것이며, 나는 또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이 “유령” ‘코이즈미’에게 새로운 일이 떨어진다. ⟪민들레 철도⟫라는 작품의 판매부수가 뒤늦게 올라가고 있었던 것. 숫자를 살펴보던 영업부장은 담당직원인 ‘코이즈미’에게 그 원인을 아느냐고 묻는다. 관심이 없으니 알 턱이 있나. 영업부의 다른 직원들이 최근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했는데 이 재미있는 캐릭터의 등장으로 뒷심을 좀 받은 것 같다고 설명한다. 때마침 다음 달 단행본 제3권 발매가 예정되어 있다. 영업부장 ‘오카’의 눈이 반짝인다. 직접 ⟪민들레 철도⟫ 단행본 1, 2권을 읽어본 그는 감명을 받는다. (이 부분도 좋았다.) ‘오카’는 영업부 직원을 불러 모은다. 다음 달 ⟪민들레 철도⟫ 제3권의 발매에 맞춰 전국 서점 전시 이벤트를 기획하고 영업부 전체가 푸쉬하자고 선언한다. 이 업무에 편집부 ‘쿠로사와’가 합류하면서 ‘코이즈미’와 짝을 이루게 된다.

이후의 전개를 예상하기는 크게 어렵지 않다. ‘쿠로사와’와 ‘코이즈미’가 함께 맡은 업무는 직접 서점을 돌아다니면서 전시 이벤트 협조를 요청하는 것. 잔뜩 기합이 든 ‘쿠로사와’의 넘치는 활력으로 영업 판촉 활동에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되고, 이를 지켜보던 의욕 제로의 ‘코이즈미’가 점점 그 에너지에 물들면서 자신의 내면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게 되어 적극적인 영업맨으로 변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코이즈미’는 ‘쿠로사와’의 아이디어를 적극 차용해 만화 코너를 넘어 철도, 여행 코너에도 ⟪민들레 철도⟫를 진열하는 홍보 방안을 주장한다. 평소 만화 코너에 가지 않는 독자층 가운데 분명 이 작품을 좋아해줄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면서. 요즘 말로 하면 표면적인 주제 분류를 따르는 것이 아닌 라이프스타일 중심 분류로 는 진열되도록 하자는 것이랄까. 이 홍보 방안이 영업부장에게 채택되고 ‘코이즈미’는 이 방안이 추진될 수 있도록 서점과의 교섭을 맡게 된다. 이 전술이 적중한 덕에 단행본 판매는 호조. TV에 소개되기에 이른다.

이때 영업부장 ‘오카’는 ‘코이즈미’에게 자신의 업무수첩(일명 비밀노트)를 보여준다. 이 업무수첩에는 각 서점 만화 담당자들의 프로필, 취미 같은 것이 적혀있다. 감탄하며 수첩을 넘겨보는 ‘코이즈미’에게 또 한 번 명대사 시전.

“우리가 파는 건 책이지만 상대하는 건 사람이야.
전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마. 우리의 마음을 그분들이 받아 손님들에게 전해주시는 거다.
만화가 재미있다고 해서 꼭 잘 팔리는 것은 아니다. 혼자 팔리는 작품은 없어.
팔린 작품 뒤에는 반드시 그 작품을 판 사람이 있다. 바로 우리가 파는 거야.”

제대로 자극을 받은 ‘코이즈미’는 원거리에 있는 서점들에 보낼 편지 인사말도 정성스럽게 준비하여 작성한다. ‘민들레’ 그림이 그려진 편지지, 스티커도 준비한다. (이걸 골라준 센스 있는 사람은 물론 ‘쿠로사와’.) 이때의 독백. “입사한 지 3년. 그동안 나는 뭘 했던 걸까. 열심히 하자. 지금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난 평생 유령인 채 살아야 한다.” 스스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 공부와 맞지 않다고 생각하며 어쩐지 겉돌고 있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듯한 말이었다. 울림이 있었다.

이번 화는 만화가의 손을 떠난 작품이 편집자의 손을 거쳐 서점을 통해 독자의 손에 전달되기까지, 특히 ‘영업’이라 불리는 활동의 특성을 담아냈다. 영업부서 탈출을 꿈꾸던 ‘코이즈미’가 내적 변화를 일으키며 적극적인 영업 사원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쫓는다. 좋은 만화가 더 많은 독자에게 알려질 수 있도록, 만화가와 영업부서 사이에서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하는 일 역시 ‘편집자의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글이 길어져서, 제3화는 다음에.

⟨중쇄를 찍자!⟩ 제1화는 어린시절 유도 만화를 읽고 유도 선수가 되기로 결심, 대학까지 쭉 유도만 하던 ‘쿠로사와 코코로’(쿠로키 하루)가 주간 코믹지 ⟪바이브스⟫ 편집부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고, ‘드래곤’ 시리즈로 30년간 주간지 연재를 이어오던 거장 만화가 ‘미쿠라야마 류’(코히나타 후미요)가 돌연 연재 중단을 선언하여 편집부가 발칵 뒤집히는 이야기를 다룬다. 

(※ 이하 스포일러 주의)

대책 없이 밝고 명랑하고 활기와 박력이 넘치는 신입사원 “새끼곰” ‘쿠로사와’의 매력이 한껏 묻어남과 동시에 ‘편집자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첫 여정이 담긴 에피소드다. 첫 장면, 그가 면접에 임하며 했던 독백이 인상적이다. 

“면접은 유도와 같다. 익숙해지면 보이기 시작한다. 상대방 마음의 움직임. 숨결. 상대가 숨을 뱉는 순간에 기술을 건다.”

그의 진면목을 대번에 알아본 사장님의 한마디 역시. “바둑 기사든 마작사든 스포츠 선수든 정말 강한 승부사는 모두 체축이 흔들리지 않아요. 그런 인간이 무운을 가지고 있죠. 우리 출판업계도 승부의 세계입니다.” (사장님, 면접 당일 청소부로 변장하신 건 아무래도 클리셰였어요.)

30년간 주간지 연재 마라톤을 이어 온 거장 만화가 ‘미쿠라야마 류’가 갑작스럽게 연재를 중단한 것은 그의 문하생 ‘칸바라’군이 그의 작품에 대한 인터넷 상의 뒷담화 — 주로, 작화가 붕괴되고 있다는 지적과 오랜 연재로 인해 한물 간 작품이라는 독설들 — 을 모아 팩스로 전송했기 때문이다. 충격이었을까. 충격이었겠지.

그러나 그가 충격을 받았던 것은 단순히 나빠지고 있는 그림에 대한 비난 때문이 아니었다. 

“그림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그림을 그리고 있었어. … 하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만화를 통해 계속 전하려고 했던, 인간은 소중하고 아름답고, 다정함이야말로 인간의 강함이라는 것. 그게 전혀 전해지지 않았어. 그들에게도… 계속 옆에 있었던 칸바라군에게도… 한심해. 정말 나 자신이 한심해.”

실의에 빠져 집필을 중단한 거장 만화가가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도울 방법은 무엇일까. 이제 막 입사한 막내이지만,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해보고 싶어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쿠로사와’는 신입사원 연수시절 연을 맺었던 서점에 들러 점원과 대화를 나누고, 그가 만든 특설 매대를 유심히 관찰하던 중 ‘유레카 모멘트’를 맞이한다. 그리고 이를 편집부에 알리기 위해 전속력으로 뛰어간다.

“스포츠 선수는 트레이닝을 매일 게을리하지 않는다. 가능한 한 오래 강한 선수로 있기 위해 근력을 유지하는 노력을 쌓는다. 그런데도, 나이를 거스르는 건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늙어감에 따라 근력은 떨어져 간다.”라는 독백과 함께. 전혀 속도가 떨어지지 않은 채 바람을 가르며 뛰어가는 ‘쿠로사와’의 모습에 썩 잘 어울리는 대사였다.

‘쿠로사와’의 아이디어를 들고 만화가를 찾아간 부편집장 ‘이오키베 케이’(오다기리 죠)가 조근조근 진심을 전달하는 장면. 

“저를 포함한 편집부 전체가 오랜 세월에 걸쳐 선생님께 응석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혼자서 훌륭한 작품을 계속 만들어내시는 선생님께 저희는 경외심을 품으며 동시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원고를 받을 수 있는 상황에 익숙해졌던 겁니다. 그렇게 집필을 그만두실 정도로 힘들어하고 계실 때 의논조차 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편집자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의 힌트가 되는 대사였다. 힘을 쫙 뺀 연기가 일품이었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계획된 물량을 빠르게 소진하고 다시 한 번 인쇄에 돌입하는 일은 여러모로 기쁜 일일 것이다. 출판인에게 ‘중판’(重版)이란 승소, 재계약, 계약 연장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자신의 능력을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이니. 또, 자신이 좋다고 여기는 작품이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니. 참고로, 극중 편집부 직원들이 저녁을 먹은 식당 이름도 ‘중판’(重版)이었다. 우리는 ‘중판’이나 ‘중쇄’(重刷)보다는 ‘증쇄’(增刷)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쓰는 것 같지만.


이걸 보려고 왓챠플레이에 가입했다. 가입 첫 한 달은 무료 이용이라는 은혜로운 프로모션. 가입 단계에서 기존 작품에 대한 별점 평가를 하면 나의 취향을 분석해준다기에 10개 정도만 하면 되려나 했더니 개수가 쌓일수록 상태메시지가 달라지더라. 「이왕 하는 김에 100개를 채웁시다」라는 둥. 그래서 하다보니 299개를 했는데, 역시 이왕 하는 김에 300개를 채우려고 해도 정말 10분 가까이 스크롤만 내렸는데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작품들만 나오길래 이쯤에서 멈췄다.

‘소설가’ 하루키는 자신이 쓰는 ‘에세이’는 “맥주 회사가 만드는 우롱차”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소설을 쓰고 남은 자투리 생각, 소재를 모아 에세이를 쓴다고. 그러나 이왕 쓰는 만큼 최고의 에세이를 쓰고 싶다고. (호오, 좋은 자세로군요, 하루키군.)

책 제목은 맨 처음 실린 글과 중간 어디쯤 실린 글의 제목을 합친 것인데, 그러니까 전혀 관계 없는 두 에세이의 제목을 붙여서 이 에세이집 책 제목을 만든 것이다. 너무 대충이잖아, 싶어서 원제를 찾아보니 «커다란 순무, 어려운 아보카도»이다. 역시 에세이 2개의 제목을 이어서 붙였다. 딱히 선정 이유가 있는 것일까. 편집자들이 모여 앉아서 가장 좋았던 에세이를 꼽아봤더니 이렇게 1위, 2위를 했다던가.

그렇게 놓고 보니, 일본어로 된 원제는 순무와 아보카도 둘 다 채소인데, 한국어 번역판은 채소와 바다표범이 등장해서 어쩐지 좀 더 풍부하고 황당한 느낌이 든달까. 순무-아보카도 조합보다는 채소-바다표범의 조합이 좀 더 낯설지 않은가.

각 에세이 말미에 한 두 문장의 유머나 수수께끼나 생뚱맞은 딴 얘기를 써놓았다. 가령 <채소의 기분>에는 “야마노테센의 노선도는 피망 모양입니다. 알고 계셨나요?” 같은. 이걸 어디서 봤더라 했는데 최근 읽은 ⟪날마다, 브랜드⟫에서도 이런 구성이 있었다. 저자가 하루키 에세이의 팬이라고 밝혔는데, 관련이 있는 것 같달까.

역시 주말 휴일에는 말랑한 에세이가 좋다. 이 책 덕분에 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파티란 다 합해서 열 명에서 열다섯 명 정도의 사람들이 나직한 목소리로 얘기하고, 누구도 명함 교환 따위는 하지 않고, 일 얘기도 하지 않고, 방 저쪽에서는 현악 4중주단이 모차르트를 단정하게 연주하고, 사람을 잘 따르는 샴고양이가 소파에서 기분 좋게 자고 있고, 맛있는 피노누아르를 따고, 밤바다가 보이는 발코니 위로 호박색 반달이 떠오르고, 산들바람은 향기롭고, 실크시폰 드레스를 입은 지적이고 아름다운 중년 여성이 내게 친절하고 정중하게 타조 사육법을 가르쳐주는 — 그런 파티다. (p.27)

내게도 에세이를 쓸 때의 원칙, 방침 같은 것은 일단 있다. 첫째, 남의 악담을 구체적으로 쓰지 않기. 둘째, 변명과 자랑을 되도록 쓰지 않기. 셋째, 시사적인 화제는 피하기. … 옛날 미국 서부의 술집 피아노에는 ‘피아니스트를 쏘지 말아주세요. 그도 열심히 연주하고 있습니다’ 하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 피스톨, 갖고 있지 않으시죠. (p.34)

이 년쯤 전의 일인데, 보스턴의 펜웨이 구장에서 레드삭스 대 양키스의 시합을 보았다. 3루 측 뒷자리여서 3루수의 수비를 바로 코앞에서 볼 수 있었다. 양키스의 3루수는 물론 알렉스 로드리게스. 시합이 시작되고부터 끝날 때까지 투수도 타자도 제대로 보지 않고 그의 수비만 관찰했다. 어째서냐고? 그 움직임이 아름다울 만치 훌륭해서. 공 하나하나마다 미묘하게 수비 위치를 이동하여 자세를 바로잡았다. 한 시합에 백오십 번의 피칭이 있었다면 정확히 백오십 번의 까치발을 했고, 마치 표범처럼 온몸에 힘이 넘쳐났다. 그 리듬이 훌륭했다. 어느 공 하나 힘을 빼지 않았다. (p.98~99)

게다가 여자아이들이 책에 사인을 받은 뒤 “무라카미 씨, 키스해주세요”라고 하는 바람에 나는 어쩔 수 없이(거짓말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뺨에 키스를 했다. 계속 그렇게 하니 시간이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출판사 사람은 “시간 없으니 키스까지는 하지 마세요”라고 했지만, 그런 기회는 흔치 않았으므로 “아뇨, 작가로서 마지막까지 의무를 다하겠습니다”라고 주장하며 원하는 대로 키스해주었다. (p.110)

수세식 화장실에 ‘대소’ 레버가 있는데, 그걸 ‘강약’으로 하면 안 되는 걸까? (p.111)

수집(마음을 쏟는 대상)할 때의 문제는 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얼마나 그걸 이해하고 사랑하는가, 그런 기억이 당신 안에 얼마나 선명히 머물러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이 커뮤니케이션의 진짜 의미일 것이다. (p.123)

고교 시절에 나는 소설가가 될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 내가 언젠가 제대로 된 글을 쓰게 되리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책을 읽고 있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아니, 책 담았던 상자의 냄새만으로도 행복했다. 지금은 당연한 얼굴로 뭔가 거들먹거리는 소리를 하고 있지만. (p.139)

그러나 납작하게 짜부라진 맥주 캔은 뭔가 안쓰럽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어젯밤 비운 알루미늄캔을 아침에 볼 때면 까닭 없이 허무해진다. ‘아아, 또 이렇게 마셔버렸네’ 싶은. 반면 빈병은 언제나 꼿꼿하고 단정하게 바로 서 있다. (p.143)

‘자유로워지다’라는 것은 설령 그것이 잠깐 동안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역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멋진 것이다. (p.175)

음악은 그때 어쩌다보니 그곳에 있었다. 나는 그걸 무심히 집어들어 보이지 않는 옷으로 몸에 걸쳤다. / 사람은 때로 안고 있는 슬픔과 고통을 음악에 실어 그것의 무게로 제 자신이 낱낱이 흩어지는 것을 막으려 한다. 음악에는 그런 실용적인 기능이 있다. / 소설에도 역시 같은 기능이 있다. 마음속 고통이나 슬픔은 개인적이고 고립된 것이긴 하지만 동시에 더욱 깊은 곳에서 누군가와 서로 공유할 수도 있고, 공통의 넓은 풍경 속에 슬며시 끼워넣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소설은 가르쳐준다. / 내가 쓴 글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그런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p.219)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6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비채


최근 우버(Uber)의 브랜드 리뉴얼 케이스을 보면서 ‘브랜드’와 ‘디자인’이 불가분의 관계라는 생각을 했다. 하기사 언어적, 시각적 표현 수단인 디자인을 빼놓고 브랜드를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책은 브랜드 (비주얼) 아이덴티티 만들기에 초점을 맞추어 브랜드의 본질, 필수 구성요소, 브랜드 전략, 디자인 프로세스, 리서치, 분석, 컨셉 개발을 설명한다.

대학에서 그래픽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는 저자가 디자이너 또는 디자이너 지망생을 위해 썼다. 뒤로 갈수록 실무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디자이너에게 일을 맡겨야 할 입장에서도 참고하면 유익한 것들이다.

원제는 «브랜드 아이덴티티 만들기 - 디자이너를 위한 가이드»(Creating A Brand Identity: A Guide For Designers)이다. 책의 내용과 구성을 정확히 담아낸 군더더기 없는 네이밍이다.

제7장 컨셉 개발에서 소개된 영감을 찾는 법을 아래에 옮겨둔다:

  • 구경하기 - 남들의 창작 세계. ‘잡동사니 수집가’ 접근법.
  • 묻기 - 지적 호기심과 탐구심이 강하고 사색적인 사람들을 모은다.
  • 배우기 - 타깃 오디언스가 사는 세계로 직접 들어가서 그들에게 감정이입.
  • 팀워크.
  • 음악(브랜드의 ‘감성’과 통하는) 감상.
  • 평가하기 - 본 것과 수집한 것을 분석. 그것들이 내게 영감으로 다가온 이유를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되새김질 한다. 그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문한다. 각각의 이미지에 숨은 뜻을 캐고 주석을 다는 작업은 영감의 대상을 해체해서 제대로 알아보게 한다. 생각 되새김질 없는 스케치북은 그저 시작 자료의 의미 없는 모음일 뿐이다.
  • 몽상. 쉬어간다. 무위의 세계로 간다.
  • 항상 수첩과 펜을 가지고 다닌다.
  • 영감을 주는 이미지들을 바로바로 채집한다.
  • 무조건 시작하고 보는 것도 착상에 매우 효과적이다.
  • 영감을 찾는 과정에서 자존심을 접어두자. (p.257~257)
브랜드 디자인 - 6점
캐서린 슬레이드브루킹 지음, 이재경 옮김/홍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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